절대다수
가을에 읽으려고 사둔 책인데 순번이 밀리고 밀려 2025년의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런데 외려 겨울과 더 잘 어울리는 책이어서 좋았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내용 투성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게 어렵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알 거 같으나 그걸 책 속의 어느 부분에서 깨달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의 메시지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열등감 없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부러워하지 않는 삶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필사한 내용의 일부를 또 한 번 기록해야겠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꺼리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요한이 한 말이다. 이 책에서 요한은 뭐랄까… 삶을 꿰뚫어 보는 인물이다.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온전한 통찰을 하였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더 외로워 보인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온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으 모르기 때문이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단이다. 친구들에게도 이 부분을 찍어 보내주었다.
서로를 알아봐주는거, 그 힘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나에게는 아주 위대하다.
나는 작은 차가움에도 괜히 쫄고 반대로 아주 작은 미묘한 다정함에도 금방 녹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다.
아주 대단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식당 사장님께 의례적으로 하는 “잘 먹었습니다.”, 편의점 알바생에게 하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이런 사소한 인사 한 마디가 전구가 불을 밝히는데 큰 힘이 되어줄 거 같다는 생각이다.
절대다수
이 책에서는 절대다수라는 말이 등장한다. 작가는 절대다수가 극소수를 부러워한다고 표현한다. 절대다수가 극소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극소수는 자기만의 것이 확고한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 거 같다.
아직 나는 절대다수이지만, 곧 언젠가는 극소수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극소수의 영역에 도달하도록 돕고 싶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꽤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거다.
글을 쓰다 보니까 책의 내용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절대다수가 되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는 거. 서로 다정하게 대해주는 거.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는 거.
이 정도인 듯하다.
시간이 지나 또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때는 요한의 말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