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어둠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참 흥미로웠다.
나는 인영과 가장 비슷하다.
어둠이 이미 익숙해져 그 안에 있는 게 편안하다. 말로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어둠이 깊이 틀어박혀있다. 그래서 아무리 밝은 곳에 있어도 여전히 어둠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쩔 때는 그 어둠이 편하다. 빛을 보면 서둘러 어둠으로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있는 힘껏 햇빛을 쐬던, 그리고 그 햇빛을 받는 모습으로 사랑받던 그때가 그립다. 다시 그때처럼 쨍쨍한 햇빛을 받고 싶다가도 이미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걸,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 거 같아 어둠에 기댄다.
의선, 명윤, 그리고 인영이 각각 어둠을 대하는 방식과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이 이야기는 내 안의 어둠을 너무 밉게만 보던 나의 따가운 눈빛을 녹이는 등불이 되었다.
에필로그에서 나오는 의선의 기차에 대한 기억에서 터널을 매게로 어둠과 빛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첫 터널을 나와 보였던 흰 산. 검은 산이었지만 꼭대기에는 눈이 얼어있었다. 두 번째 터널을 나왔을 때는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가장 긴 터널을 지나고 나오니 빛이 맞이하고 있었다. "터널을 꿰어오기 전에는 날이 침침하여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산 이편의 날씨는 맑았다." 끝이 안 보이던 어둠에 지쳐 앞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결국에는 밝은 햇빛이 찾아왔다.
어둠과 빛은 결코 멀지 않다.
얼마 전 바닷가를 바라보는데 정확히 내가 앉은 곳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는 아주 강한 햇빛이 쨍쨍했고 왼쪽으로는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은 먹구름들이 가득해 어두웠다.
이 책은 마치 그 장면과도 같다.
밝고 하얀 눈 속에서도 계속해서 어둠을 생각하는 주인공들. 밝은 눈 속을 헤매지만 의선을 찾지 못한다는 어두운 사실. 밝음 속에서 눈을 감아 어둠으로 가는 명윤. 어두운 탄광 위의 밝은 빛. 검은 사슴의 밝은 뿔.
의선과 명윤은 반복해서 어둠을 맞이하며 불안과 좌절 혐오와 같은 어두운 감정들을 느낀다. 하지만 왠지 그들이 우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딱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자신을 알아가고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빛을 찾기보다는 어둠과 빛을 오가는 게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듯하다.
삶은 빛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둠은 벗어날 수 없을뿐더러 벗어나야만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빛은 무한히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등잔 밑이 어둠 다는 말처럼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거 같아도 분명 내가 보지 못한 빛이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굳이 아주 “잘” 살아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부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