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은 성폭력 피해자 주인의 이야기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주인이는 상처가 없는 명랑한 소녀로 등장한다.
그러다가 점차 주인이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며 주변 인물들이 주인이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주인이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모두가 좋아할 거 같은 사람의 모습이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주인이의 성폭력 피해 사건이 드러난 이후로는 주인이가 더 부러웠다. 나도 성폭력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일이 있는데 아직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주인이는 너무나도 씩씩하고 활기차게 삶을 대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마치 가해자를 완전히 용서한 것처럼 그런 상처 따위가 내 삶을 좌절시키지 않는다는 듯한 주인이의 태도와 자신감이 부러웠다. 주인이는 상처로부터 완전히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완전한 극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는 여전히 아프다.
세차장에서 울부짖으며 감정을 쏟으며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생긴 거야"라고 말하는 주인이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 안에는 주인이의 울분과 좌절, 아픔과 지침이 담겨있었다.
나도 가끔 왜 나였을까 생각한다.
세차장 장면이 있기 전까지 주인이의 모습에서는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는 노력하고 있는 거다. 그 상처로부터 좌절되지 않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상처는 내 인생의 흠이 아니며 벗어나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그 상처를 두 번 다시는 떠올리지 않고, 그 일 때문에 또 힘들고 작아지는 날이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은 이미 망한 거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끔 하고는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잘 살다가도 그냥 상처가 욱신거리는 날들이 있는 거다. 그럴 때는 그냥 충분히 아파하고 또 다음 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찾아온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영화에서 주인이는 누군가로부터 의문의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에서 주인이에게 진짜 너의 모습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편지를 받은 주인이는 학교를 뛰쳐나온다.
주인이가 육교에 서서 잠시 사색에 잠긴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진짜인지 아니면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인지 고민하는 듯했다.
나도 이 날의 주인이처럼 나를 의심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데 그냥 행복한 척하다 보면 행복해지는 거고 밝은 척하다 보면 밝아지는 거 아닐까 싶다. 굳이 그게 온전히 진짜인지 의심해야할까?
영화 마지막에 주인이가 받던 의문의 편지가 주인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사실 주인이와 같이 상처가 있는 사람이 주인이의 모습에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주인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반 친구들이 돌아가며 읽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괜찮다고, 다들 상처하나 쯤은 있는 거라고, 그 상처는 너의 흠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걸 말하는 방식이 왜 너만 아픈 것처럼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그런 건 너에게 흠이 되지 않아. 우리 모두 상처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 잘 살 수 있어’라고 잔잔하지만 아주 시끄럽게 나를 응원해 주었다.
괜찮아. 너무 아프고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날들이 있지만, 그런 날들이 내 인생 전부를 대표하기에는 삶은 너무 길어. 그런 짧은 순간들로 너의 인생 전부를 단정 짓지 마.
주인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