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angerine
Dec 12. 2022
삶이 알려주는 '알람'같이
한 고비가 끝났다는 평온함이 밀물처럼
내 맘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내 곧 잔잔한 평온함 위로
새로운 걱정은 수영장의 튜브처럼 떠올랐고
그렇게 튜브를 숨기려 아래로 힘주어 내리고 있을 때,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나'라는 것과는 분리되고
또, '걱정'이란 것을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무(無)'의 상태.
하지만
그것도 역시나 잠시,
아홉수에 돌입하자
삶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제품을 사고받는 잔돈처럼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잘하고 못한 일을
정확히 계산하여 값을 치르게 했다.
그것도 나의 못된 성향과 비슷한 인간을 골라서 말이다.
그런 일 년 동안의 처절한 괴롭힘 속에
내게 남은 교훈이란 건
시내 공원 풀 숲 한켠,
쾌쾌 먹은 돌에 새겨진 문장뿐이었다.
'바르게 살자.'
역시나 절대적 진리는 간단하고 명확했으며
나는 그저 삶이 만든 규칙과 통제된 시스템을
잘 따르면 큰 문제없이 죽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홉수의 또 다른 사고들을 피하려
주말에는 집에 콕 박혀
이쪽저쪽 분주하게 티비 채널을 돌리다
잘 나가는 연예인을 보면
"쟤는 뭔데 삶이 저렇게 관대할까?"싶다가도
일 년도 안되어 삶이 한방에 내치는 걸 보며
삶의 계산기는 역시나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사계절 변화처럼 느꼈다.
역시나 삶의 계산기는
더 주고받음이 없이 그저 '0'으로 수렴했고
'언제'라는 보상과 벌의 시간만이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우린,
신이 만든 삶이란 롤플레잉 게임 속
말에 지나지 않으며
어쩌면
이 인생이란 게임 속 최고의 엔딩은
'인간으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비밀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또, 그 비밀이란 것도
역시나 간결하고 명확하며 누구나 아는 문장일테다.
서로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나란 놈은
아직도 아홉수에 매여
바르게 살자는 생각만 하고 실천도 못하는데
이제는 남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자비까지 베풀어야 한다니...
안타깝고 안타깝다...
나의 윤회의 고리는
몇 번이나 다시 시작될까?
이 반복되고 애처로운 인간의 삶은
언제까지나 반복되어야만 할까?
변해야 한다.
이번 생엔 망했더라도
아니 다음 생을 위해서라도
아니 다음 아홉수를 위해서라도
우선, 바르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