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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Jan 24. 2021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추락에도 바닥은 있다.

나는 20대 초반 때 몸이 많이 아팠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열감기인 줄 알았는데 증상이 계속 악화되었다. 어린 나이여서 금방 회복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아픈 시간은 길어져 갔다. 아픈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마음도 함께 지쳐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혼자 목욕하기도 버거웠던 나를 엄마가 씻겨주었다.

그리고 그날 절망하던 나의 마음은 폭발해 버렸다.

엄마, 나는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누가 자꾸 내 발을 잡아당겨서 끌어내리는 것 같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한테 울면서 했던 그 말이 똑똑히 기억난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몸을 씻겨 주셨다.

이제 갓 20살 넘은 딸에게 그런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을까? 아마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시느라 아무 말도 못 하셨을 것이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시련은 나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몸도 마음도 바닥까지 갔던 그 날 이후, 조금씩 회복하며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끝이 안보였던 추락에도 바닥은 있고, 그 바닥을 찍고 나면 반드시 떠오른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문득 바닥을 찍고, 떠오른다는 것이 물에 빠졌을 때와 흡사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물에 빠지면 가라앉게 된다. 빨리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물며 숨이 차서 더 고통스러워진다. 발버둥을 치는 대신 숨을 참고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다 어느 순간 바닥에 도달한다.

그리고 바닥이 닿는 그 순간, 힘차게 발을 뻗어 뛰어오르면 빠르게 그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말로는 어려울 거 같지 않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쉽지 않다. 갑작스럽게 물에 빠진다면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게 되고, 바닥이 어딜지 모르는 두려움 그리고 숨 막힘이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 바닥에 도착할 때까지 차분하게 숨을 잘 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다 보면 누구나 금전, 인간관계, 일, 건강 등 본인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위기가 생긴다. 그럴 때 처지를 비관하거나 남을 원망하는 등 부정적인 상태가 되기 쉽다. 부정적인 상태에서는 나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해결책 또한 좋은 방법이 나올 리 없다. 그런 상태에서 서둘러서 빨리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하니 발버둥을 치게 된다.
우선 내가 물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곧 바닥에 닿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의 현재 상태와 주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하며 버티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바닥에 도달할 시간까지 잘 견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바닥에 닿는 순간은 내가 바로 알기 어렵다. 조금씩 상황이 좋아질 때야 비로소 바닥을 찍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숨을 참으며 생각했던 방법들을 실행하면 좀 더 빨리 그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고, 물에 빠지기 전보다 더 좋은 길로 나갈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까지의 숨만 참으면 닿을 수 있는 깊이에 바닥이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그 깊이는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바닥까지 도달할 수 있는 심폐기능이 존재한다.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깨달았던 이 진리는 40대가 된 지금도 유효하며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이 있긴 할까?" 하는 순간 어쩌면 0.1cm만 더 내려가면 바닥일 수도 있고, 이미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순간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원래 인생 자체가 존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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