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게 섣부른 조언을 하다.

by 라엘리아나

회사에서 알게 된 친한 후배가 있다.

한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는 나와 달리 그 후배는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며 나와는 다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큰일이 생겼다며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매출 저조로 인해 팀이 해체되면서 지금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팀으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탓에 대응할 세도 없이 결정이 나버렸다고 했다.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 후배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졌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나의 성향대로 바로 퇴사를 고려하기보다는 새로운 팀에서 적응하면서 원래 하던 업무를 다시 할 수 있는 새 회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내 대답을 들은 후배는 참고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그 후배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궁금해졌고, 문득 나에게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17년을 디자인팀에서 일해 온 나를 파이낸스팀으로 옮기라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 생각만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두라는 소리인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고작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지금까지 힘들게 일했던 건가?'를 시작으로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팀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17년의 디자인 경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파이낸스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꼴이다.

회사에서의 내 인격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 현재의 역할이 모두 사라지는 충격과 허무함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에 큰 상처가 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퇴사를 하기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나는 이제 이직하기 쉽지 않은 나이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직이 오랫동안 안된다면 파이낸스 신입사원으로 옮기는 것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가시밭길이고, 어렵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한 축이 무너지면 다른 축들도 영향을 받게 되고 결국 삶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회사라는 축의 위치와 깊이가 달라서 흔들림 또한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후배와 나에게는 중요한 위치에 깊숙이 위치해 있어서 인생이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문제였다.


이렇게 큰 문제를 단순하게 버티느냐 나가느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조언한 내가 부끄러워졌고 후배에게 미안했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조언해야 했다.

그리고 조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을 마음을 헤아려주고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게 먼저였다.

얼마 후 후배를 만나 나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후배는 힘들었던 그때가 생각났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그 당시 심정과 함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말해줬다. 우선 새로운 팀으로 옮겨서 적응하며 이직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이니 계획대로 새 팀에서 적응 잘하고,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좋겠다.

나도 이번 기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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