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원 n년차 설 연휴 때였다.
설 연휴 3일 중 2일을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했었다.
출근 시간보다 이른 아침 7시에 미소를 지으며 버스를 탔다.지금 같으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설에도 이 고생을 해야 하냐며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때는 오히려 그 점을 더 뿌듯해했던 것 같다.
내가 알아서 설 연휴를 반납하고, 출근 시간보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멋진 너란 녀석!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며 출근했었지 싶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때 출근할 때의 나의 밝은 표정과 뿌듯해하던 마음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회사를 사랑했고, 야근이 많았어도 순수하게 일하는 게 좋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좋았던 일들도 많았지만 실망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면서 사랑은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
실망했던 일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는데 그중 가장 컸던 건 합병 때였다.
합병과 정리 해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합병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 해고가 시작됐다.
나는 남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떠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니 맘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명단을 보니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운영진 이름은 거의 빠진 채 사원, 대리급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회사가 합병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운영진들의 책임도 꽤 있었을 거 같은데 쏙 빠진 느낌이었다.
운영진들은 이직이 힘들 테니 그런 부분들을 참고했겠지만 그래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직원은 소모품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소모품은 꼭 소모가 다돼서 버려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상사나 운영진에게 미운털이 박히거나 상황에 따라서 버려질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내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처가 클 텐데 애사심까지 있다면 그 상처와 배신감은 배로 클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애초에 사랑이란 단어와 회사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회사와 직원은 돈으로 계약된 관계이다.
그래서 그 계약에 수반된 내용을 서로 잘 지키면 될 뿐, 굳이 사랑은 필요 없다.
나는 회사를 사랑해도 회사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짝사랑에 가깝다. 짝사랑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짝사랑은 상처 받을 대로 받고 끝나게 된다.
애사심 대신 나를 더 사랑하는 게 나와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생활과 나를 분리했을 때 더 집중하며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만으로 직원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애사심은 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만들면 된다.
나는 애사심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회사생활에 없어도 되는 항목이 생겨서 지운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