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리아나 Apr 14. 2022

남자친구와 가고 싶지 않은 그곳, 삼청공원

삼청동에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 이유는 맛집이 많아서도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서 쇼핑하기 좋아서도 아닌 삼청공원 때문이었다.

삼청공원은 힐링이라는 단어와 매우 잘 어울리는 곳이었고, 나의 최애 힐링 장소였다.

그런데 삼청동은 와봤어도 삼청공원은 아예 모르거나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때 핫플레이스였던 삼청동은 대부분 유명한 맛집, 카페 또는 한옥 마을을 보려고 오기 때문에 공원은 관심사가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들어봤어도 공원이라고 하니 삼청동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어서 갈 생각조차 안  할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안국역에서 내려 사람들이 붐비는 맛집 거리를 지나 15분 정도 올라가면 삼청공원이 나온다.

분명 몇 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였는데 삼청공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한적한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공원이 아니라 멀리 외곽으로 나가 산림욕 하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삼청공원 근처에 살고 싶었다.

언제든지 힘든 일이 있을 때 달려가면 치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삼청동에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주말에만 가도 충분히 힐링되는 같아서 희망사항으로 남겨두었다.

나의 삼청공원 코스는 이랬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삼청동이 나오고, 그즈음 목이 마르기 시작한다. 삼청동 거리에 있는 수많은 카페 중 한 곳을 골라 커피를 산 후, 삼청공원으로 간다.

그리고 공원 벤치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다 삼청공원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시 집으로 온다.

삼청공원의 매력에 빠진 나는 한 동안 매주 일요일에 이 코스로 한 주를 마무리했었다.

공원까지 가는 동안 한 주에 있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정리했고, 그 한 주가 어땠는지에 따라 달달한 커피 또는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공원에서 치유받고 집으로 오곤 했다.

그렇게 삼청공원을 다녀온 일요일은 한 주를 잘 정리하고, 햇볕을 받으며 산책을 해서인지 잠도 잘 잤다.

이 코스만 반복하던 어느 날 산책하면서 표지판으로만 보던 말바위 전망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화창한 어느 날 평소보다 좀 일찍 출발해 말바위 전망대에 올라갔다.

30분 정도 올라갔더니 전망대에 도착했다.

계단이 잘되어 있어서 평소에 등산하지 않는 사람들도 충분히 올라갈만하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코스가 힘들지 않아서 인지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도 보였다.

높은 산이 아니라 다른 산들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 서울 전경이 만족스러웠다.

삼청공원 봄과 가을에도 매력을 발산한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특히, 가을 단풍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낙엽이 떨어질 무렵에는 꼭 삼청공원에 간다.

매년 가도 자주 가도 질리지 않고, 참 좋다.

그래서 삼청공원은 남자친구와 가고 싶지 않다.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추억 때문에 나의 최애 힐링 장소인 이곳을 찾지 않게 된다면 많이 속상할 것 같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었던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삼청공원에서는 한 번도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잘한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는 남자친구와 삼청공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사주를 안 보기 시작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