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 일이다. 엄마랑 여행을 가면 꼭 한 번 이상은 다투게 된다. 엄마랑 여행을 가본 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번 여행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매일 다른 풍경을보며 행복했던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프랑스로 떠나던 날 아침 다툼이 시작됐다.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기 위해 슈퍼세이버 티켓을 끊어 놨는데 이 티켓은 원래 가격보다 50% 이상 저렴해서 취소나 변경이 안된다.그래서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서 출발했다. 역에 도착하니 기차 도착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다. 한 숨 고르는 찰나 엄마가 소리쳤다.
"잠바를 놓고 왔어!"
오늘 입으려고 장롱에 걸어놨던 잠바를 서둘러 준비하다 두고 온 것이었다.다시 호텔에 갔다 오려고 시계를 보니 5분밖에안 남았다. 너무 늦었다.
이번 열차를 포기하고 다음 열차를 타기에는 금전적인 손해가 크다. 기차가 연착되는 행운(?)이 있을까 하며 기차 앱을 확인해봤는데 1분의 오차도 없다.
역시 스위스 기차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기차에 탔다.
기차에 타고도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며 호텔에 전화를 해서 확인해봤다. 두고 간 점퍼를 확인했고, 국제 우편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 비용은 52프랑이라고 했다.
52프랑이면 6만 원 정도의 돈이다.. 하...
비싼 겨울 점퍼면 고려해보겠지만 홑겹의 여름 점퍼이다.
엄마와 상의 후 그냥 포기하기로 합의를 봤다.
합의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 다툼이 시작됐다.
엄마 : 그 잠바 몇 번 입어보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깝다. 아까워...
나 : 그러게 잘 챙겼어야지.
엄마 : 너도 나오기 전에 장롱 한 번 살펴보았으면 좋았잖아.
나 : 엄마 건 엄마가 챙겼어야지.
엄마 : 같이 여행 왔으니까 너도 챙길 수도 있지. 꼭 그렇게 말해야 돼?
나 : 엄마가 잃어버려놓고 왜 나한테 그래.
엄마 : 속상하니까 그렇지...
엄마는 계속 자책하며 속상해하셨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그리고 바젤에서 스트라스부르로 환승할 즈음부터 엄마도 아무 말씀 안 하셨다.
그 날밤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엄마와 다툰 일이 생각나며 후회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실수로 잠바를 잃어버려 속상해하시는데 왜 나는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했을까 하며 말이다. 열흘도 안 되는 짧은 여행 기간에 잃어버린 잠바 때문에 소중한 시간까지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그리고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엄마 내가 잠바 다시 사줄게. 속상하겠지만 잊어버리고, 남은 여행 즐겁게 하자~기분 풀어요~"
나는 왜 이 한마디를 못했을까?
잠바를 잃어버려서 속상한 엄마를 위로해 드렸어야 했는데 오히려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했으면 됐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다정한 딸은 아닌 것 같다.
늙어가시는 엄마를 보며 더 잘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여행을 계획했는데 오히려 불효를 한 셈이다.
엄마와 나는 누구보다도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기 때문에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절친한 모녀 사이답게 스트라스부르에 도착 후부터 즐거운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화해가 따로 필요 없는 사이라 다툼도 많은 게 아닌 게 싶다. 그렇지만 늦게라도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 실천했다. 엄마는 어제 일을 아직까지 생각했냐면서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도 됐다며 웃으셨다. 역시 엄마다.
이렇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어제 같이 후회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내가 나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