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는 그다지 계획적이지 않은 J인데 여행 계획을 짤 때만은 파워 J로 변신했다. 그리고 계획 짜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서 ppt로 가이드북까지 만들었다. 아래 이미지들은 꽤 오래전 유럽 여행 때 만든 가이드북의 일부이다.
이랬던 내가 이번 제주도 여행은 ppt는커녕 계획도 짜지 않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친구와 가는 여행이었는데 비행기 티켓과 호텔만 예약한 후, 그날 상황에 따라 동선을 정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번 여행기는 뚜벅이들의 제주 여행 정보 제공 목적이 크다. 여행 블로그의 매우 긴 설명과 수십 장의 사진들 그리고 숨은 광고에 지친 분들을 위해 최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진을 보여주려고 한다.
제주에서의 첫 끼는 김만복 김밥의 김밥과 해물라면이었다. 제주에서 유명한 김밥집으로 2년 전 여행 왔을 때 먹고 싶었는데 품절돼서 못 먹었었다. 그런데 마침 호텔 가는 길에 있어서 반가워하며 찾아갔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김밥 안의 계란은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특별하지 않은 맛에 비해 가격은 8,500원으로 비쌌다. 9,500원인 해물라면도 제주니까 좀 더 싱싱하고 푸짐한 해물의 양을 기대했는데 여느 김밥집 해물라면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안 먹어봤음 계속 궁금했을 텐데 한 번 먹어본 걸로 족했다.
우리는 제주에서의 아쉬운 첫끼를 뒤로하고, 더 그랜드 섬오름 호텔로향했다. 친구가 우연히 홈쇼핑 채널에서 2박 특가 패키지로 나온 걸 보고예약한 곳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만족이었다. 우선 방 자체가 넓고 룸 컨디션도 좋았고, 부대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뷰는 별로 안 좋았는데 추가 금액을 내면 오션뷰가 가능했다. 우리는 뷰를 중요시하지 않아서 돈을 아끼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예쁜 노을을 보며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니 제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낭만이 느껴지는 바닷가를 보니 연인과 함께 걸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소화가 다 됐는지 디저트가 먹고 싶어졌다. 우리가 구매한 2박 특가에는 디저트 세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브라우니와 당근 케이크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제주도 왔으니 무조건 당근 케이크다. 음료는 아메리카노와 감귤 주스가 있었는데 하나씩 골라서 방으로 포장해 왔다. 감귤 주스는 시판용 같았지만 당근 케이크는 아주 맛있었고, 크기도 꽤 컸다. 야무지게 디저트까지 먹은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여행 둘째 날이 밝았다. 조식을 위해 7시도 안 돼서 일어나 세수만 하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리가 1등일 줄 알았는데 이미 4~5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어제 디저트에 이어 조식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었다.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한 우리는 오설록 티뮤지엄에 가기로 했다. 버스가 마땅치 않아 택시를 탔는데 재미있는 기사님을 만났다. 가이드처럼 현지 관광지와 맛집을 알려주었다. 맛집 중 오는 정 김밥을 소개해줬는데 김밥 하나로 서귀포에 건물을 세운 대단한 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두 분은 이번 생애에 못 먹어요.
그 말을 듣고 검색해 보니 제주 3대 김밥 맛집이라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전화 연결도 힘들다고 했다. 김만복 김밥에 실망을 해서인지 큰 기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생애에 못 먹을 거라는 말에 오기가 생겨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는 사이 오설록 티뮤지엄에 도착했다.
오설록 티뮤지엄은 정원과 녹차밭이 유명한 곳인데 맛있는 음료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기 좋은 곳이었다. 녹차 와플 오프레도를 먹으면서 다음 코스를 찾기로 했다. 조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배가 안 꺼져서 소화시킬 겸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근처에 그림카페라는 곳이 있었다. 이색적이기도 하고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서 가기로 했다. 막상 가보니 사진처럼 이색적이긴 했는데 뭐랄까? 사진만 봤어도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근데 색달라서 아이들은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왔으니 여기저기서 사진 찍고 쉬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출발했다.
저녁은 돼지고기 특수부위 전문점인 뽈살집으로 정했다.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 쪽에 있어서 식사를 하고 시장 구경을 하면 좋은 코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근처에 기사님이 이번 생애에 못 먹을 거라던 오는 정 김밥도 있었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낮지만 고기를 먹고 들려보기로 했다.
뽈살집의 고기들은 생각만큼 맛있었고, 직원들 모두 친절했다. 서비스로 계란찜과 된장찌개 그리고 떡갈비가 나왔는데 모두 다 맛있었다. 근데 삼겹살이나 목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맛있는 고기이니 추천한다. 그런데 한참 먹는 중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보는 순간 오는 정 김밥이 생각났다. 비가 많이 와서 예약하고 못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오는 정 김밥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취소가 있어서 기본 김밥 2줄과 멸치 김밥을 1줄을 살 수 있었다. 취소이기 때문에 김밥을 고를 수는 없었지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취소가 간간히 있는 것 같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김밥 하나에 우리는 행복해졌고, 시장 구경을 하고 호텔로 복귀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걸어서인지 배가 꺼져 바로 김밥을 맛봤다. 간이 센 보통 김밥이었는데 중독적인 맛이 있었다. 어느새 한 줄을 뚝딱하고 멸치 김밥을 먹었는데 멸치 김밥은 그냥 그랬다. 근데 다른 김밥들도 먹어보고 싶어 졌고 다음에 오면 또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김밥 하나로 건물을 세운게 아닌 듯싶었다. 돼지고기와 김밥으로 즐거운 저녁을 보낸 여행 둘째 날이 기분 좋게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