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창 바쁘게 일하는 시간이라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친구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너 소개팅할래?”
얼마 만에 들어오는 소개팅 제안인지 반가운 마음에, 상대가 누군지도 묻지 않고 수락할 뻔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주선자는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어머니였다. 친구 어머니의 소개라 간단한 프로필만 듣고 만남을 결정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그를 만났다.
요즘은 소개팅에서도 식사보다 카페가 대세인 모양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하던 카페 만남이 지인 소개팅에서도 이어졌다. 그의 첫인상은 최근 내가 만난 남자들 중 가장 멀끔한 편이었다.
초반 대화도 무난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뒤, 그는 자신의 지난 연애 이야기를 꺼냈다. 장기 연애를 하다 몇 년 전 헤어졌다고 말한 뒤, 내 마지막 연애에 대해 물어왔다.
첫 만남에서 굳이 왜 묻는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물어본 이상 대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얼마나 만났느냐고 묻기에, 1년 정도라고 답하자 헤어진 이유도 이어서 물었다. 둘러대는데 소질이 없던 나는 잠수이별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짜 사귄 거 맞아요?”
이미 1년 정도 만났다고 말한 뒤였다.
그래서 그 질문은 단순한 의아함이 아니라, 나의 지난 연애 자체를 부정하는 말처럼 들렸다.
순간, 그에게 왜 잠수이별을 당했는지까지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40대에 1년 가까이 만나고 잠수이별이라는 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저 질문은, 대화라기보다는 검증에 가까웠다.
그때부터 조금씩 불편해졌지만, 그는 내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질문을 이어갔다. 전 남자친구의 직업에 이어 재테크 방법까지 물어봤다.
질문들에 대해 적당히 답하는 나와 달리 그의 답은 짧고 간단했다.
그제야 알았다.
그는 나를 알고 싶어 한 게 아니라,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는 걸.
뒤늦게 그의 이별 이유를 물었더니 장기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무논리의 대답을 들으니 더 묻지 말라는 신호처럼 느껴졌고, 그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대화는 그렇게 정리됐다.
집에 돌아와 오늘 만남을 되짚으며 떠오른 단어는 하나였다.
테스트였구나!
결혼이 급한 나이에 시간을 아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단번에 사람을 판단하려는 건 과욕이다.
이번 소개팅은 신붓감 면접을 본 기분이었다.
합격해도 전혀 기쁘지 않을 면접.
결혼정보회사 만남이 아닌 오랜만의 소개팅이라 조금은 기대했는데, 이번에도 실망이었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오래 곱씹었을 일을, 이제는 비교적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지겹지만) 또다시 나는 외면과 내면을 천천히 다듬으며 기다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