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예정 기간은 2주였는데 감염자가 계속 늘면서 한 주씩 연장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월급과 함께 카드 명세서가 도착했다.
카드 명세서를 열기 전 이번 달은 카드값이 줄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우선 재택을 하고, 친구들을 안 만났으니 교통비가 0이다. 외식도 안 했고, 외출을 안 하니 옷도 안 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카드 명세서 첫 페이지에는 전 달 보다 더 큰 숫자가 찍혀있었다.
엥? 이게 뭐지? 하며 상세내역으로 넘어갔다.
(카드값이 많이 나왔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세 내역을 살펴보지만 언제나 내가 쓴 카드값이 맞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한눈에 사용처들이 보였다. 마트와 배달앱 위주의 식비였다.분명 외식은 한 번도 안 했는데 외식 못지않게 집에서 사 먹은 것이다.
식비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어 없이 그냥 막 긁은 것이 문제였다.옷이나 가방, 신발 등을 쇼핑할 때는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몇 번을 고민하지만 먹는 건 별 고민 없이 결제로 직행한다.
그럼 왜 이렇게 식비를 많이 긁게 된 걸까?
첫 번째는 배달음식이었다.
처음 재택을 시작할 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수가 무서워서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만 밥을 먹으니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이용하기 시작했다.장보고, 음식 만드는 수고는 덜어주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다.
배달음식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는 식사 종류 외에 커피,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류까지 배달시켜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달앱을 이용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배달할 때 최소 주문 금액이 존재한다.그래서 커피의 경우 커피 2잔으로는 최소 금액이 모자라서 조각 케이크, 빵 등을 추가했다.
그러다 보니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한 번에 만원을 넘게 쓰게 되었고, 처음으로 배달앱 VIP가 되었다.
두 번째는 마트 장보기였다.
시간이 좀 흘러, 동네 산책 정도는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퇴근 시간이 늦은 편이어서 집에 오면 씻고, 밥 먹기 바빴는데 퇴근하면 바로 집이니 저녁 먹기 전, 후로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는 마트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회사를 안 가고, 친구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으니 장 볼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평소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내가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니 요리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달고나 커피'였다.
물론, 요리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달고나 커피를 위해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자일로스 설탕'을 샀으며 4,000번 젓는 건 할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전동 미니 거품기'까지 구매했다. 커피 하나를 위해 사용한 금액이 웬만한 요리 못지않았다. 거기다 빵이랑 먹으면 더 맛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크루아상도 사 왔다. 물론, 같이 먹으니 더 맛있었다. (찡긋)
'달고나 커피'를 해보니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화사의 '두부 유부초밥'에 도전했다.
생각보다 맛있었고, 유부초밥재료를 대량 구매하게 됐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요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해 요리다운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고, 빠네 떡볶이와 빠네 스파게티도 도전해봤다. 이렇게 마트 장보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되었고, 배달음식도 덜 이용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안 들고, 친구를 안 만나고, 외식을 안 하니 카드값이 줄었을 거라는 예상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카드값이 늘어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외부활동을 못하니 밖에서 느끼던 즐거움을 집으로 옮겨와 느끼기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나는 만족한다. 카드값은 더 나왔지만 퇴근해서 드러눕기 바빴던 일상에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산책을 하고, 장을 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요리라는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시적이라고 생각해서 만족감이 높은 것이다.
동료들과 도란도란 앉아 점심을 먹으며 친구들과 만나 즐겁게 수다를 떨고, 마음껏 외출할 수 있는 건강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