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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May 24. 2020

세 번째 정기 기부를 끊었다.

성인이 될 무렵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하고 싶은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웠다. 그중 하나가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돈을 벌기 시작하니 월급은 작고, 이것저것 쓸 곳은 많았다.

그래서 '돈 벌기 시작하면'에서 '돈을 좀 더 많이 벌기 시작하면'으로 시작 시기를 늦추고, 가끔 기부를 했다.

시간이 흘러 월급이 오르면서 정기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액이었지만 제대로 도움이 되고 싶어 여러 자료를 확인하여 기부 금액 사용 내용이 투명하다는 단체를 찾아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꾸준히 기부하던 어느 날 그 단체에서 유흥 주점 등 업무와 관련 없는 곳에 큰돈을 썼다는 기사를 봤다.

실망감에 바로 기부를 끊었다.

그 후 좀 더 꼼꼼하게 알아보고, 두 번째 정기 기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몇 년 후, 다시 비리 기사를 보게 되면서 기부를 끊었다. 두 번이나 기부를 끊으니 세 번째 기부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꼼꼼하게 찾는다고 해도 언제 또, 기부를 끊을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처음 정기 기부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캠페인을 펼치는 단체에서 시작했다.

두 번째는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곳에 기부했었다.  

그리고 번째가 되니 기존과는 다른 방향의 기부를 고민해보았다. 그래서 이웃을 돕는 으로 제한을 두지 않고, 좀 더 다양한 기부 단체를 찾아보았다.

최종 선택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이 있고, 실질적으로 바로 도움이 가능한 곳으로 정했다.

이번에는 오래 기부하길 바랬는데 며칠 전 큰 비리가 터졌다.

어느새 세 번째 기부 단체에 배신당한 셈이다.

이전 두 곳의 비리도 화가 났지만 기부를 끊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는데 이번에는 기부했던 돈을 돌려받고 싶을 정도로 배신감이 훨씬 컸다. 역사의 산 증인들의 이름을 이용해 기부를 받다니 분노가 솟구쳤다. 아마 이 소식을 듣고, 나처럼 분노를 느끼며 기부를 끊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리가 일회성이 아닌 기부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데 있다.

세 번이나 배신을 당하니 더 이상 기부 단체들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기부를 시작한다 해도 같은 문제가 생길까 봐 고민되고, 기부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나는 세 번째에 마음이 접히기 시작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또는 새로 기부를 시작하려다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안 좋은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기부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기부도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부를 끊었을 때 피해는 고스란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입는다.

기부를 악용하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도움을 못 받는 사태가 발생하다니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 기부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기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누구에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고, 혼자 소액을 하는 것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지금 같이 소액이지만 정기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다. 정기 기부하던 금액을 적금으로 들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일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직접 기부하는 방법이다.

이번 달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기부는 얼마가 됐든 간에 돈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돈을 아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귀한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값지게 여기며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단체가 많이 생기길 바라며 기존의 단체들도 기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잘 운영했으면 좋겠다.

런 기부 단체들이 많아져 나를 포함해 기부를 중단했거나 시작할 마음을 접은 사람들이 다시 기부를 시작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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