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업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나의 17번째 '입사 기념일' 알람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달력에 입력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를 축하하기 위해 입력해 놓은 그날이다.
입사 기념일을 핸드폰에 입력해놓고, 축하하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닐 것 같다.
'굳이, 기념하고 축하하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1주년 때부터 입사 기념일을 챙긴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입사 기념일을 챙기기 시작한 건 10주년 때부터였다. 한 회사를 10년 다녔다는 자체가 스스로 대견하고, 기뻤다.
그래서 셀프 축하와 함께 큰 선물을 줬었다.
사실 싱글들은 축하받을만한 이벤트가 별로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기억 못 하는 입사 기념일을 자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10주년을 시작으로 매 해마다 소소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 스스로를 축하했다. 보통 며칠 전쯤 뭘 먹을지 정해놓는데 올해는 잊고 있었다. 당일이라도 알람으로 알았으니 올해도 셀프 축하는 이어져야 한다.
기념일이면 케이크다.(는 핑계고, 원래 케이크를 좋아한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은 자제하고 있어서 조각 케이크를 배달시켰다.
초까지 켜는 건 오버 같아서 케이크를 먹기 전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간단하게 축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18, 19번째 입사 기념일도 축하할 수 있을까?
실은 이 생각을 한 게 처음은 아니다.
14번째 기념일 때는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 퇴사를 생각하고 있어서 마지막 입사 기념일로 생각하며 축하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15번째를 넘어서서 17번째 기념일까지 오다니 감개무량하다.
15년이 되던 해에 장기 근속상을 받았었다.
그때 수상 소감 중에 이런 말을 했었다.
15년 다녔으니 이왕 이렇게 버틴 거 20년까지 버텨보겠습니다!
진심 반, 농담 반이었던 소감이었는데 이제는 온전한 진심이 되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많았는데 계속 다니고 싶어 졌다. 내가 버티기만 하면 20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많은 회사들이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매우 안 좋고, 우리 회사 역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그 여파로 무급 휴직 신청을 받고, 임원들의 월급도 삭감하기 시작했다.
계속 매출인 안 좋을 경우 사원들에게까지 적용될 것이며 나아가 인원 감축의 가능성도 있다.
20년이 아니라 내년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태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내 의지가 아닌 퇴사를 하게 되더라도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두 번의 합병을 통해 원치 않아도 한 번 결정된 일은 그대로 진행되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17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며 충분히 내 역할을 다 했으니 나에게 휴식의 시간을 준다는 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건 지금의 생각일 뿐 막상 닥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7번째 나의 입사 기념일에 이런 상황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 누구도 코로나를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나의 17년 간의 회사 생활도 예상대로 되지만은 않았지만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듯이 이번에도 잘 이겨내 내가 진정 휴식하고 싶을 때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