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엘리아나 Sep 06. 2020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 보낸 5일간의 휴가

내가 이번 휴가를 정한 건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코로나로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지만 8월 말 정도면 조금은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현재 그동안 시행한 적 없었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이다.

처음 휴가 계획을 세울 때는 한적한 곳으로 2박 정도 쉬고 와서 여유롭게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는 소식을 듣고, 모두 취소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인데 계획이 다 취소되니 우울해졌다.

그렇지만 가만히 우울해하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고, 거리두기를 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획들을 정해보았다.


매일 지킬 것들

1. 오전 10시 전에 일어나기

2. 1시간 정도 산책
3. 매일 새로운 카페에서 커피 Take-out
4. 저녁식사 후 홈트 1시간
5. 자기 전 1시간 이상 책 읽기  

처음에는 휴가인데 늘어지게 자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머지 계획들을 지키려면 너무 늦게 일어나서 하기 어려울 것 같아 기상 시간을 10시 전으로 정했다.
그리고 재택근무로 낮에는 나갈 수가 없어 햇볕을 쬐며 1시간 정도 산책하고, 한 번도 안 가봤던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 와 느긋한 커피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저녁에는 업무의 강도나 스트레스에 따라 띄엄띄엄했던 홈트를 하고, 자기 전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계획을 세웠다.


휴가 기간 동안 해야 할 일들

영화 한 편 이상 보기, 브런치북 구상


Day 1

10시 즈음에 일어나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티비를 보다 산책을 나갔다. 산책 후, 지나치기만 했던 카페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이스라떼를 주문했다. 주문 후, 가게 직원이 방명록을 내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커피를 기다리며 진열되어있는 조각 케이크들을 보고, 살까 고민했지만 오늘은 커피만! 아이스라떼는 3천 원으로 저렴하면서도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앞으로 자주 찾을 것 같다.

커피를 마신 후 뭘 할까 하다 영화 '반도'를 봤다.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때를 놓쳐 늦게나마 보게 되었다. 좀비신은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봤다.

강동원은 여전히 멋있었고, '서대위'를 맡은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서대위'를 연기한 배우가 궁금해져서 네이버에 '반도'를 치니 '반도 서대위'가 관련 검색어로 같이 나왔다. 이렇게 연관 검색어로 뜨는 걸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 것 같다. 역시 보는 눈들은 비슷하다.

저녁 식사 후, 홈트를 했고 자기 전 책도 읽었다. 오늘의 미션 모두 실행했으니 내일도 성공하길 바라며...  

산책길에서 만난 고양이들

Day 2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다.

어제와 똑같은 패턴으로 산책을 하고, 어제 커피를 샀던 그 카페에 다시 들려 살까 말까 고민했던 롤케이크 한 조각을 샀다. 다른 곳에서 커피 사기 귀찮으니 커피도 같이 살까 했는데 그래도 원래 계획은 지키고 싶어 근처 다른 카페에서 사 왔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오늘도 성공이다. 진작 다른 카페들도 가볼 걸 매번 가던 곳만 갔는지 모르겠다. 도전보다는 안전을 추구하는 내 성향이 여기서도 나오는 듯하다.

커피 타임 후, 9월 말에 공지가 나오는 브런치북을 구상했다.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가닥을 잡았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써봐야겠다.

매일 다른 곳에서 마셨던 커피들 (하나는 디저트 사진과 함께)

Day 3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장마에 이제는 태풍까지 정말 가지가지한다.

남부 지방은 피해가 크다던데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1시가 넘어가니 빗줄기가 가늘어져 산책은 못하더라도 커피는 사 올 수 있을 거 같아서 집 밖을 나섰다.

막상 나와보니 산책 가능한 가는 빗줄기여서 가까운 공원을 산책했다. 평일이고 비가 오니 사람의 거의 없고, 나무들은 더 푸르렀다. 오는 길에 커피를 사며 티라미스 조각 케이크도 같이 사 왔다. 오늘도 커피는 맛있었고, 티라미스는 더 맛있었다. 그런데 커피를 반 잔쯤 마셨을 때쯤 갑자기 커피가 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3일째 하루 한 잔 마시는 커피가 왜 벌써 물린 걸까?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마시던 커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졸린 오후의 잠을 깨 주는 역할, 스트레스받았을 때는 달콤한 커피로 기분 전환, 수고하는 나를 위한 작은 보상 등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휴가 때 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커피 외에 다른 의미가 없었다. 커피 한 잔이 뭐라고 이렇게 의미를 찾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3일 만에 물린다는 느낌이 신기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내일과 모레의 커피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까지 '아이스라떼'만 마셨으니 내일은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마셔야지!  

보슬비가 내리던 공원

Day 4

창문이 흔들리는 엄청난 바람소리에 7시 즈음 잠이 깼다. 뉴스를 보니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했는데 영향이 남아 있나 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계속 뉴스를 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깨보니 비는 그치고 바람도 좀 잠잠해졌다. 태풍이 와전 빠져나갔나 보다. 날씨가 또 언제 바뀔지 몰라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갔다.

원래 내일 방문하려고 계획했던 디저트 맛집을 방문했다. 얼마 전 배달해 먹어봤던 곳인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산책하기에도 좋은 거리였다. 가보니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예쁜 디저트 가게였다.

많은 메뉴 중 고르고 골라 스콘, 구겔호프, 미니 까눌레와 아이스라떼를 포장해왔다.

어제는 아이스라떼가 물려서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마시려고 했는데 디저트가 달콤하니 커피는 달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스라떼로 주문했고, 이 선택은 옳았다.


Day 5

어제 마신 커피가 진했는지 3시까지 뒤척이다 잠들어서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날씨가 엄청 좋았다.

오늘은 동네 산책 대신 창경궁을 가기로 했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어제 못 마셨던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한 잔 들고 창경궁으로 향했다.

(음식물은 반입이 안되지만 음료는 반입 가능)

입장권도 따로 살 필요 없이 교통카드로 결제하며 바로 들어가니 편리했다. 

날씨도 좋고, 푸르른 나무들도 좋고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더 좋았다.

1시간 정도 돌아본 후, 얼마 전 TV에 나온 떡볶이 맛집으로 출발했다. 떡볶이와 어묵, 만두 등을 포장해와서 맛있게 먹었다. 소화를 시키고, 저녁 일정인 홈트와 책을 읽으니 어느새 5일간의 휴가가 끝나갔다.



코로나를 처음 겪듯이 이렇게 여행과 만남을 모두 포기한 여름휴가도 처음이었다.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휴가가 대수냐 싶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니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주말의 연장선처럼 뒹굴기만 하고 지냈을 텐데 혼자만의 약속이지만 잘 지킨 걸 보니 뿌듯하면서도 의미가 있었다.

모두들 지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잘 지켜내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는 날이 오길 오늘도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들어본 90년대 댄스곡들의 특이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