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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리아나 Sep 27. 2020

나는 손톱을 깎으며 마음을 정리한다.

손톱을 깎는 건 누구나 일정기간마다 하는 일상생활 중 하나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내일은 손톱 깎는 날!

이렇게 정해놓는 것도 아닌 어느 순간 손톱이 길어 불편하거나 손을 봤을 때 길어진 걸 느끼면 그때 깎는다. 나는 보통 컴퓨터 자판을 칠 때 거슬리기 시작하면 그날 밤에 손톱을 깎는 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나의 손톱 깎는 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손톱 깎는 게 평범한 일상이 아닌 나만의 의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손톱이 길어져 불편함을 느껴 손톱깎기를 들었다. 그때 갑자기 그 날 회사에서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이 생각났다. 웬만하면 회사 스트레스는 퇴근과 함께 회사에 두고 오려고 하는데 그날따라 또렷이 그 기분이 생각이 나버렸다.

이 기분을 어떻게 떨쳐버리나 생각하다 내가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인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손톱을 깎다 보니 니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손톱과 함께 기분 나빴던 나의 기분도 함께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이거 괜찮은 방법인데?

어떤 마음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열 개의 손톱을 깎으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휙 깎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하나하나씩 진행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좀 더 천천히 또는 좀 더 빠르게 마음대로 시간 조절도 가능하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에 한 가지 마음씩 버릴 수도 있고, 한 가지 마음을 열 손가락에 나눠 버릴 수도 있다.

그 마음을 나누는 것 또한 자유롭다.

(손톱으로 다 안되면 발톱도 깎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손톱을 깎으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깎아버린 손톱을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점이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 기억은 아예 지워진 게 아니라 희미해진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워진 줄 알았던 그 기억은 때때로 다시 선명하게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마음 정리를 하며 깎은 손톱은 확실하게 쓰레기통에 버린다.  

물론, 정리한 그 마음을 100% 모두 버렸다고는 못하지만 실제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 행동을 한 차이가 분명히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손톱이 길지 않아도 마음 정리가 필요할 때 손톱을 깎는다. 다행히 마음 정리할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아서 적당한 손톱 길이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의 길이보다 더 짧아지지 않기를 바라며 좀 더 길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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