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

나의 엄마 이야기

by 안나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신다. 꾀 안 부리고 밤낮없이 바지런히 일해도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와 사시사철 농사일로 바빴던 부모님. 어린 시절 가을 학교 운동회 날, 눈이 빠지도록 교문만 쳐다보며 엄마를 기다리면, 이미 점심 다 먹은 친구들이 자판 한가득 널어놓은 조잡한 장난감 따위를 사면서 낄낄 거릴 때, 정신없이 밭에서 일하다 겨우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달려오시던 엄마. 그래도 반갑고 좋아서 한달음에 달려가며 설렜던 기억이 난다. 다른 집처럼 3단 찬합에 불고기도 잡채도, 햄 넣은 알록달록한 김밥도 없었지만, 엄마가 갓 지어온 따뜻하고 찰기 가득한 찰밥에 겉절이만 먹어도 나도 엄마가 왔다는 사실에 그저 맛있고 행복했다.


장대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여름날, 2교시 수업을 하던 중 서둘러 ‘귀가’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은 저마다 데리러 온 엄마의 손을 잡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혹시나 올지도 모를 엄마를 기다리며 교실 처마 밑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 비를 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멀다 않고 당연하게 걸어 다니던 길이 그날따라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가슴속 서러움이 터져 나올 무렵, 코끝으로 전해지는 쑥개떡 냄새. 엄마가 데워놓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온몸이 노곤하게 말랑해질 때쯤, 뒷마당에 연하게 올라온 어린 쑥을 한 움큼 낫으로 베어내어 무쇠솥에서 갓 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엄마의 쑥개떡. 밀려드는 허기와 엄마의 따뜻한 손길에 서운함은 어느새 사르르 녹아버리고 앉은자리에서 배가 빵빵해지도록 쫀득쫀득한 쑥개떡을 몇 개나 집어 먹었는지. 지금도 가끔 그때 먹었던 그 쑥개떡이 생각난다.


그저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를 챙기지 못했던 엄마지만 생일날만큼은 꼭 나를 데리고 시장 통닭집에 가서 통닭을 사 주셨다. 엄마 손을 잡고 장에서 유일했던 통닭집에 가면, 기름 솥 한가득 맛있는 통닭이 튀겨질 때 내 마음도 그만큼 행복으로 가득 부풀었던 것 같다. 철 지난 달력 뒷장이었는지 새하얀 전지였는지, 종이에 둘둘 말아 싼 통닭 한 마리와 새콤한 무 한 봉지만 있어도 세상 행복했던 나의 어린 시절.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삶이 고단해 통닭 한 마리 사 줄 여유가 없었을 때도 연중행사처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 딸내미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 약속을 지키려 내내 노력하셨겠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장통 @@통닭. 3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여전히 그 시절 그 통닭집에서 통닭을 사 주신다.


어린 시절 남들이 보기에는 무심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상황에서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나도 나이를 먹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른 평범한 부모들처럼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시는지,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엄마가 뭐 해줄까?” 항상 물으신다. 집안일도 파업할 나이에 여전히 자식 밥상 차리기에 진심인 엄마. 자작하게 지진 강된장에 여린 잎만 골라 하나하나 대를 벗겨 쪄낸 호박잎 쌈, 풋고추에 밀가루를 묻혀 쪄낸 뒤 양념한 고추찜, 밀가루를 직접 치대 반죽을 하고 면을 뽑아 춘장으로 소스까지 만든 수타짜장면, 후식으로 먹으면 세상 개운한 달지 않은 엄마표 식혜와 감을 직접 깎아 가을볕에 잘 말린 달콤한 곶감을 가득 넣은 수정과, 갱엿을 일일이 녹여 만든 각종 수제 강정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마음과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들이 없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자식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는 그 마음은, 아마도 그 시절 남들처럼 평범하게 챙기지 못했던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엄마의 최선이었던, 지금도 여전한 내 엄마의 사랑 표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