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줍니다

by 이지오

초등학교 때 과학 시간.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 앞에 막대자석이 두 개 놓여 있죠? 각 자석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칠해져 있고요. 두 자석을 같은 색끼리 한 번 붙여볼래요?”

‘어?’

이 ‘어?’라는 느낌이 내 기억 속 최초의 불가항력이었다. 어떻게든 자석을 붙여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 둘이 서로를 밀어내는 힘은 대단했다. 나는 졌다. 척력斥力이라는 불가항력에.


Simple Clean Tablet Mockup Technology Digital Art Youtube Thumbnail.jpg


인간은 끊임없이 내가 가서 달라붙을 타인을 찾아 다닌다. 어릴 땐 부모님 품에 안기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조금 나이가 들면 연인과 손을 잡는다. 결혼하면 배우자와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좋아하는 사람과 붙어있으면 외롭지 않다. 그래서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인간은 장미와 같다. 너무 가까워지면 각자의 몸에 달린 가시가 서로를 쿡쿡 찌른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척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사람을 더 사랑할수록 그 힘도 함께 커진다.

나와 어머니의 관계도 그랬다. 어릴 때 난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면 어머닌 “우리 아들!”하면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런 훈훈함도 잠시. 내가 숙제하는 걸 잠시 미루고 만화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머닌 곧장 큰 소리로 나무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이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이제 할라 그랬는데 왜 소리 질러요!”

“미리 해놓고 보면 엄마가 왜 소릴 질러!”

그렇다. 어머니와 나는 자석으로 치면 같은 극이다. 같은 극끼리는 절대 달라붙지 않는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척력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석과 인간은 다른 점이 있다. 같은 극끼리의 인간은 멀어지다가도 서로한테서 ‘나’를 발견한다. 그때 그들은 물방울이 된다. 비 오는 날 창문에 맺힌 물방울처럼 서로를 발견하면 금세 달라붙는다.

어느 날 어머니 방에서 『흘러간 팝송』이라는 포켓북을 발견했다. 누우렇게 변색된 싸구려 종이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책 안에는 6, 70년대 팝송 가사가 쓰여 있고 그 밑에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번역은 오류투성이였다. 책표지엔 출판사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엄마, 이거 무슨 책이에요?”

“아, 그거 옛날에 엄마 회사 다닐 때 길거리에서 산 거야.”

어머니가 회사 다닐 때라면 결혼 전이란 소린데, 그럼 30년도 더 된 책 아닌가.

“이걸 왜 샀어요?”

“어릴 때 즐겨 듣던 노래가 많아서. 엄만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는데, 그때 참 외로웠지. 그때 엄마 마음을 위로해주던 게 팝송이었거든.”



당시만 해도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팝은 머라이어 캐리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정도였다. 그런데 6, 70년대 팝송이라니, 너무도 먼 이야기 같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책인 것 같아서 도로 제자리에 놓고 방에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친척 동생이 놀러 왔다.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데 동생이 들어와 물었다.

“형, 뭐 듣고 있어?”

“이거? 원더걸스 몰라?”

“아니, 알긴 알지. 근데 이게 언제 적 노랜데……이런 거 말고 좀 핫한 요즘 노래 없어?”


그때 난 깨달았다. 나도 어머니처럼 흘러간 음악을 들으면서 옛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전부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팝송으로 추억하던 시절이 외로운 시절이었던 것처럼.

내가 흘러간 노래를 듣고 있었던 이유는, 그 노래 속에는 나의 추억이 서려있고, 나의 꿈이 있고,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있고, 무엇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흘러간 팝송』을 들고 나와 책 안에 실린 노래들을 일일이 찾아 들어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상상해보았다.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을. 아직은 엄마 아빠 품이 절실한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카펜터스와 비틀즈를 듣고 있던 어머니. 그때 어머니 눈동자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사랑은 다리를 놓아 준답니다

당신의 가슴과 내 가슴 사이에


- 더 저즈The Judds의 <Love Can Build A Bridge> 중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연결해주는 건 사랑뿐만이 아니다. 음악에도 똑같은 힘이 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팝송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기면서 한동안 서먹했던 관계가 풀리기 시작했다.

같은 극을 가진 자석은 서로 붙일 수 없지만 같은 극의 마음은 붙일 수 있다. 음악으로 둘 사이에 다리를 연결함으로써 말이다.




이 책의 집필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는 ‘나부터 행복한 삶’, 2부에는 ‘더불어 행복한 삶’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선 나부터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는 늘 결핍을 느끼고 그 결핍을 다른 사람을 통해 메우려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의존 혹은 착취가 발생한다. 어느 쪽이든 상대를 괴롭힌다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반면,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외려 베풀고 나눈다. 그러므로 나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나와 주변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다음으로, 더불어 행복한 삶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결코 나 혼자 행복하다고 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수학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빵 한 개를 혼자 먹을 때보다 옆 사람과 나누어 먹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 풍요로울 땐 혼자서 빵을 열 개나 먹어도 행복한 줄 모르지만, 빈곤할 땐 옆 사람이 나눠준 빵 반쪽이 기적 같은 행복을 선사한다. 더불어 느끼는 행복은 나누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각 챕터를 구성하는 글에선 1950년대부터 2천 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팝송들 중 작가가 선별한 곡의 가사 일부와 간단한 곡 소개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곡의 주제와 관련된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사유를 통해 행복에 대한 정의를 기술할 생각이다. 참고로 가사의 경우, 직역할 때 어색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작가 개인의 의역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 다룰 아티스트의 연령은 밀레니얼 세대부터 이제는 황혼기에 접어들었거나 이미 영서[永逝]에 든 경우까지 다양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는 결국 다음 두 가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나부터 행복한 삶과 더불어 행복한 삶.”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