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 페이스풀, As Tears Go By (1964)
대학 시절 교수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학생은 나중에 책을 한 권 꼭 써보세요.”
이 말 한 마디가 내 용기의 모든 원천이 되었다.
그날도 난생처음 도전하는 책쓰기에 매진하러 동네 카페로 향하는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도, 풍성한 흰 구름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대학생 땐 술 마시고 노느라, 회사 다닐 땐 퇴근 후 약속이다 뭐다 해서 매일 저녁 늦게나 귀가했다. 주말엔 저녁까지 잠을 잤고, 어쩌다 낮에 깨어 있더라도 침대에서 종일 뒹굴거렸다. 그렇게 내 삶에서 낮은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오랜만에 낮 하늘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 본 하늘과 똑같았다. 어린 시절 나는 먼 지방에서 살았는데, 그런데도 수십 년 전 수백 킬로 떨어진 지역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똑같다는 게 신기했다.
<As Tears Go By>는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가 만들고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부른 노래다. 동네 커피숍에서 노래 알바를 하던 페이스풀에게 처음 가수로서 유명세를 안겨 준 곡이기도 하다.
반 농담이겠지만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 하나가 전해진다. 어느 날 롤링스톤스의 매니저가 재거와 리처즈를 방 안에 가둔 뒤 이렇게 말했다.
"곡 하날 완성할 때까진 못 나올 줄 알아. 어린 아가씨가 부를 노래이니 야하지 않은 가사로 써 봐."
이렇게 해서 탄생한 <As Tears Go By>는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롤링스톤스 버전으로도 재탄생해 큰 사랑을 받는다.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나는 소리였다.
‘우리 아파트에 저렇게 아이들이 많았나?’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오래전부터 유치원이 하나 있었는데, 최근 폐원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동네에 있던 유치원도 사라진 지 오래다. 뉴스를 보면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시 초등학교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 수가 줄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일 거다.
하지만 그간 내가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없었던 건 비단 인구감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낮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낮에 밖에 나오면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릴 적 나와 내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똑같았다.
오직 나만 변했다. 나의 마음만 변한 것이다. 가진 건 손안에 든 모래 한 줌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그때에 비하면 나이와 키, 몸집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많고 커졌는데도 지금의 난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되찾고 싶은 건 딱 하나다. 어릴 적 하염없던 미소. 예능 프로를 보면서 잠깐 웃음이 났다가도 이내 걱정거리가 떠올라 곧 싸늘하게 식고 마는 그런 미소가 아니라, 어린 시절처럼 끊이질 않고 새어 나오던 그런 미소 말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갖고 싶다. 한 번만 더. 내 생애 딱 한 번만 더.
다들 30년 전보다는 지금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줄었나요?
그렇다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리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