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 휘트니 - When You Believe (1998)
때는 1992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친구가 물었다.
“너도 오늘 휴거 보러 갈 거야?”
“휴가?”
“휴거. 사람들 하늘로 올라가는 거. 오늘 우리 동네 교회 사람들 다 하늘로 올라 간데. 예수님 곁으로.”
“우리도?”
“아니. 넌 무교잖아? 그럼 안 올라가지.“
“안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데?”
“죽겠지. 그나마 넌 나아. 난 엄마 아빠땜에 절에 다녀서 지옥에 떨어질걸?”
놀라운 건, 우리 같은 꼬맹이들만 휴거를 믿은 게 아니라는 거였다. 어른들도 믿었다. 그들은 휴거를 위해 가출하고, 탈영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늘로 올라갈 때 몸이 가볍도록 낙태 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날 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땅에 붙어있던’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미 처분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설령 돌아간다 해도 집에는 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젠가 다음과 같은 우화를 읽은 적이 있다.
따르릉! (전화벨 소리)
G: 여보세요?
P: 아, 제가 지금 돈이 좀 필요하거든요?
G: 얼마나요?
P: 글쎄요, 한 5백 정도? 보내주실 수 있나요?
G: 그럼요. 필요하시다면 천만 원도 보내줄 수 있어요.
P: 잘됐군요. 그럼 지금 좀 보내주실래요? 사정이 급해서요.
G: 아 그럼 전화를 끊는 대로 바로 보내드리죠.
P: 정말요? 그럼 천을 보내주시겠다는 건가요?
G: 넵.
P: 잘됐군요. 그것 참 잘됐네……그럼 지금 좀 보내주실래요?
G: 네, 전화 끊고 바로 보낼게요.
P: 정말요? 제가 지금 사정이 좀 급해서요.
G: 네, 정말이에요.
P: 확실한가요?
G: 믿으셔도 됩니다.
P: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휴…다행이다. 그런데, 아까 천만 원이라고 하셨죠? 오백이 아니라?
G: 네, 천이요.
P: 그렇군요. 굉장하네요. 그럼……오래 걸리진 않겠죠?
G: 네, 곧바로 천만 원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P: 확실합니까? 왜냐면……제가 지금 그쪽과 통화를 한 지도 벌써 세 시간이 지났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돈은 들어오고 있지 않죠. 이런데도 제가 당신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G: 저는 세 시간 전부터 입금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쪽이 전화를 끊질 않으니 제가 어떻게 돈을 보낼까요?
위에서 P는 인간(Person), G는 신(God)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기도(prayer)에 대한 알레고리다.
인간은 신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기에 어떻게든 그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인간이 계속해서 똑같은 요구를 해오기 때문이다. 기적을 행할 틈을 도무지 주지 않는다. 그럼 제대로 된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걸까? 우화 속 주인공은 전화를 끊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현실 속 우리는?
그것은 바로 ‘감사하기’다.
좋은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쁜 일도 주로 한꺼번에 일어난다.), 신비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momentum)이라 부른다.
좋은 일이 생기는 데엔 왜 가속이 붙을까? 어쩌면 그때가 신께서 우리의 소원을 가장 잘 들어주는 때여서가 아닐까? 우리의 가슴이 감사함으로 가득 찰 때 말이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의 게랄트 휘터는 갓 태어난 망아지가 비틀거리면서도 어미에게 다가가 젖을 빠는 모습에 주목했는데, 다음날 망아지는 제법 능숙하게 목장을 누비고 다녔다.
반면 인간은 출생 후 걷기까지 적어도 1년이란 시간이 소요된다. 개나 고양이 수명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인간은 사실상 불구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이 험난한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이 시기를 거쳐 살아남았다는 건 필시 타자의 도움으로 먹을 것을 얻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일어서서 걷고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무심코 툭툭 내뱉는 ‘인생 독고다이’란 말은 오만일뿐더러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게랄트는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어도,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타자의 도움 없이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나를 깨닫는 것, 그것이 참된 기도의 시작이다. 왜냐면 기도란 내가 원하는 걸 들어달라고 떼쓰는 행위가 아닌, 내가 이 세계의 일원임을 깨닫고 그 사실에 감사를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보잘것없어도,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감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방금 들이마신 한 모금의 숨은 어떤가?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라는 볼멘소리라도 낼 수 있었을까? 지금 이 말이 다소 오글거린다면 코로나 시국을 떠올려보자. 지금처럼 자유롭게 숨 쉬는 게 과연 아무것도 아닌 일인가?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것. 그럼으로써 신의 분에 넘치는 사랑에 감격하는 것. 그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기도가 신에게 가 닿으면, 신은 아무도 상상 못한 멋진 선물을 나를 위해 준비하신다. 그걸 우린 기적이라 부른다.
당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세요. 그러면 더 갖게 될 거예요.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원히 갖지 못할 거고요.
- 오프라 윈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