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잊고 지금을 살기

짐 크로치 - Time in a Bottle (1972)

by 이지오

옛날 주리반타가라는 사람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열심히 불법의 도리를 공부했지만, 머리가 무척이나 나빴던지라 한 글자를 외우면 그 전 글자를 까먹었다.

뜻대로 공부가 되지 않자 울고 있던 그에게 부처님이 다가와 말했다.

“내일부턴 공부 대신 이 빗자루로 절 마당을 쓸어라.”

그렇게 그는 몇 년간 마당만 쓸었다. 교리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이렇게라도 부처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니, 공부 한 줄 안 하고 오직 마당만 쓸었는데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건 불법의 진리가 학습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습은 과거에 공부한 걸 미래에 되뇌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깨달음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자가 팔만사천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 없고, 미래의 아무것도 대비할 필요없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세상 모든 중생이 이루길 염원했던 부처님의 사랑이었다.




시간을 돈처럼 모을 수만 있다면

나는 1분 1초를 저축해서


영원이란 액수를 마련한 다음

당신과 나눠 쓸 거예요


누군가 내게 와서 어떤 소원이든 말하라 하면

나는 영원이란 시간을 달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그 영원 동안

하루하루를 보석처럼 모아서


당신과 나누어 쓸 거예요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시간은 늘 부족하죠

이제 나는 확실히 알죠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함께 쓰고 싶은 사람은

오직 당신이란 걸



짐 크로치는 아내를 따라 개종할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했지만, 그는 가난한 음악가였다. 집세를 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고, 퀄리티 타임quality time(가족과 보내는 단란한 시간)은 그에게 사치였다. 그 시절 염원을 담은 노래가 바로 <Time in a Bottle>이었다.


짐의 간절함이 신에게 가 닿았는지 이 노래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TV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점점 그를 찾는 연락이 잦아졌다.

노래가 히트하고 부자가 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도 더 많아지리라. 이러한 기대에 부풀어 있던 짐은 아들의 두 번째 생일을 고작 일주일 앞두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시간은 모을 수 없다. 시간이란 게 원래 그렇다.

암컷 사마귀가 짝짓기 도중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고 그의 자손을 잉태하는 것처럼, 시간도 매순간 과거를 잡아먹고 미래를 잉태한다. 아까의 현재는 이미 지금의 현재에게 잡아먹히고 없다. 즉 현재는 잔상, 흔적, 기껏해야 ‘과거의 추모追慕’일 뿐이다.

영원은 100년 + 1000년 + 10000년……이렇게 시간이 더해지고 더해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영원은 1과 2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2와 2.1 사이에, 2.1과 2.11 사이에 있다. 영원은 우리의 눈꺼풀이 닫혔다 열리는 사이에, 호흡이 들숨에서 날숨으로 전환되는 사이에 존재한다.

‘진정한 사랑은 뭘까?’

예술의 역사만큼 오래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영원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이란, 백만 년 천만 년 지속되는 사랑이 아니라, 수학적 시간관념으로부터 해방된 사랑을 뜻한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지금 이 순간’의 사랑에 내 영혼을 온전히 용해시키는 그런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이라면 설령 그 지속 기간이 단 1초라 해도 영원한 사랑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짐 크로치의 생애가 짧았다고 해서 아내와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던 그의 소망이 무조건 좌절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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