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을 잃지 말 것

줄리 런던 - Cry Me a River (1955)

by 이지오

한국의 도로 위 인심은 초보운전자에게 사납다. 내가 초보일 때도 그랬다. 차선을 바꾸려고만 해도, 심지어 깜빡이만 켜도 어김없이 뒤에서 “빵~~!”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긴장해서 진입로를 놓쳤다. 정신 차려보면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장소에 와 있었다. 서러웠다. 안 그래도 주눅 든 초보자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자기들은 초보 시절이 없었던가?

하긴 그렇다고 백날 다른 운전자 탓만 하고 있으면 뭐하나. 내가 내 갈 길을 잃은 건 어디까지나 내 책임인걸.


“내가 가야 할 길을 잃지 않을 것.”

이거야말로 당시 내게 필요했던 나를 지키는 길이었다.




울어요 그대여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눈물을 흘리세요


당신이 했던 말을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사랑 따윈 저속하다고,


그래서 나하곤 끝이라고 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사랑한다고 말하네요


울어요 그대여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나도 당신 때문에 많이 울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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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시내에서 승강기 운전원(일명 엘리베이터 걸)으로 일하던 17살의 줄리 런던은 한 캐스팅 매니저 눈에 띄어 연예계에 진출했다. 한동안 핀업 모델pin-up model로 일하던 줄리는 어느 날 전설의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기로 돼 있던 노래를 대신 부르게 되는 행운을 잡는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Cry Me a River>다.

직역하자면 ‘눈물이 강이 되도록 우세요.’ 전연인이 돌아와 다시 받아 달라고 간청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 없으니 당신은 펑펑 울기나 하라는 내용이다.


실컷 우세요, 눈물이 강이 되도록


이 가사를 보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중 루시는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아버지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자 애원한다.

“아버지,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예전에 당신이 아름다운 음악 소리 같다던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면, 울어요. 울어주세요!”

왜 울라는 걸까? 만일 아버지가 지금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상을 겪는 아버지가 마음을 숨기는 고도의 심리 게임을 할 리가 없다. 그가 운다면 그건 진심인 것이다.

하지만 <Cry Me a River>의 전 연인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녀 곁을 떠났다. 사랑은 저속하다는 말만 남긴 채. 그랬던 그가 이제 와 뭐가 아쉬워서인지 다시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있다.(분명 새 연인한테서 버림받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받아줄 맘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꼭 돌려받고 싶었다. 그의 눈물 말이다. 다시 말해 그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울면, 다시 그를 받아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를 미워하는 지금보다 사랑했던 과거가 훨씬 더 행복했기에. 『신곡』의 대사처럼, 비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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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의 주인공 부차나 구천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10년, 20년씩 장작더미를 깔고 자거나 곰쓸개를 핥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었다. 원수를 갚은 뒤엔 잠시 쾌감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고통으로 낭비된 그들 인생의 4, 5분의 1은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혹자는 온갖 고통을 감수하고 이뤄낸 복수를 승리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고통 자체가 패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자가 승자다. 복수심 때문에 감내한 고통이야말로 확실한 패배의 징표다.

복수는 내게 고통을 준다는 면에서도 패배지만, 그보다 더한 패배감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는 데에 있다. 복수가 시작되는 순간 내 삶의 모든 지표는 원수가 세우게 된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이루는 게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상대의 안중에도 없다면 그 가치 또한 폐기되고 만다.

복수에 성공하면 나는 승리했다고 믿지만, 실은 그동안 나는 원수의 세상에 들어가 그 세상 법칙에 따라 살았을 뿐이다. 한 마디로 원수가 나의 신으로서 군림해온 것이다.

그가 내 삶의 모든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규정해왔다. 그리고 복수가 끝나는 순간 그 신도 함께 죽었다. 이제 나는 무얼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한 번도 ‘나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승리의 트로피를 든 패배자가 된다.

당신도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 수 있다. 당장은 그 사람도 당신 때문에 눈물을, 당신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해 아무것도 좋을 게 없다.

언제나 내가 바라야 할 것은 상대가 나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때문에 우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부여한 가치에 따라 울고 웃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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