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경력 없음
현타에 두들겨 맞고 맥을 못 추고 있는 요즘이다. 이불속은 너무도 따뜻해 좀처럼 나오고 싶지 않고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시달린다. 뭉그적뭉그적 겨울 이불속을 빠져나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아몬드 몇 알을 씹어 삼키고 어제 보낸 메일을 확인한다. 내가 보낸 지원서를 확인했는지. 1차 서류 마감일이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고 있는 메일창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정말 화딱지가 난다.
아니! 왜! 보지도 읽지도 않을 거면서 채용 공고문은 왜 내는 거야!! 적어도 확인은 해야 하는 거 아냐! 예의 없는 사람들. 저런 것도 교사라고. 민원을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화가 솟구친다.
어떤 날은 전화를 했다.
"지원서를 보냈는데 확인되지 않고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아직 서류 마감 시간이 남아서 그래요. 마감 후 확인 할 거예요"
뒤도 돌아보지 말자 다짐하며 마지막 직장을 나왔지만, 현실은 차갑기 그지없다. 처음 가졌던 호기로운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빛을 잃어간다. 어제는 할 수 있을 거 같다가도 오늘은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도 할 수 없을 거 같은 기분이다. 정직하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경력 없음'이 강점이 되도록 의욕이 불타오른 자소서를 아무리 잘 써도 단, 한 줄! 학교 경력이 없다는 사실 하나에 나의 취업은 자꾸만 미끄러진다. 아. 그렇구나. 그럼에도 다음날이 되면 희미한 희망의 끈을 다시 붙들고 꾸역꾸역 하루치의 지원서를 넣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게 맞는 거야? 10여 년 넘게 해 온 일을 해야 하는 건가? 다시? 기분은 다시 원점이다. 종일 전화기를 들여다봐도 묵묵부답이다.
적어도 50군데는 넣어야 한 곳에서 전화가 올까 말까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고작 스무 군데를 넣고 제 풀에 꺾여 버린 느낌이다. 학교가 '경력 없음'을 꺼리는 이유를 헤아렸다. 과연, 나는 학교라는 조직에 뛰어들어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섣부른 판단에 의욕만 앞서 있나. 정작, 나는 그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 배워야 하는데... 그 고생을 자처할 만큼 학교도 나도 이 '일'에 진심인가. 의욕과 포부는 하루가 지나 있는 만큼 하락했다.
이런 내 상태를 아는지. 늦은 밤 카톡이 왔다. 서울대 나와도 무경력은 그렇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경력이라 그렇다, 학교는 지방대를 나와도 무조건 경력!! 대충 이런 식의 문자로 끈질기게 지원서를 기계처럼 내라는 격려의 톡이 한밤중에 울렸다. 써 놓은 지원서와 자소서를 복붙 복붙 복붙만 하면 되는 것도... 1%의 가능성에 매달려 지원서를 기계처럼 그냥 쓰는 것도... 나 같은 감정형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거다.
오늘도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짧은 순간 또 방향을 잃고 만다. 새로운 길에서 후진해 다시 출발점에 선다. 걸었던 길, 익숙한 길 앞에서 기웃기웃하다 내 자리가 있는지 살핀다. 서성거림과 망설임이 길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