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돌고 돌아 제자리
3월이면 수험생에서 다시 직장인이 된다. 20대 때 만난 선생님이 원장님이 되어 있을 만큼 세월이 덧없이 흘러 있었다. 2년 전 다시는 이 현장으로는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제자리인 게 자꾸 한숨이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전문상담교사라는 이름으로 '학교'라는 새 직장에서 상담교사로서 당찬 시작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목전에서 돌아선 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상담교사로서 학교에서 근무해 본 경험도 없는 내가 학교의 높은 문턱을 넘는 것이 만만찮아 보였다. 두 갈래길에서 짧은 시간 안에 빠른 선택을 해야 했는데, 어떤 선택을 했든 아쉬움과 후회는 반드시 남았을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공부해 취득한 상담교사 1급 자격증은 어떤 방법으로든 쓰일 거라며 나를 다독였던 목소리, 눈물이 차오른 눈을 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네가 결코 지난 시간과는 같지 않을 거라던 응원. 밀려오는 아쉬움을 다부진 목소리와 다정한 마음으로 밀어낸다.
#2. 불장난
사람들이 던진 뼈아픈 말보다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긴 눈빛과 표정에 더 겁을 먹었다. 뱉고만 말은 튕겨내면 되지만 표정으로 건너온 말은 빠르게 피부로 번지고 아픈 여운을 남겼다. 너는 내게 그런 상처 따위는 주지 않을 거지? 내가 차곡차곡 쌓아 놓은 높은 벽이 우르르 무너지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본디,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사랑하는 이들이 주는 사소한 것에 맥없이 흠집이 나는 게 싫기도 했다. 머리완 다르게 마음이 먼저 반응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은 표정을 하고 세월이 쌓인 농익은 관계를 바라보는 내가 싫었다. 내 행동과 내 잘못은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닿지 않게 할 거라는 자만이 아직도 속에서 우글거렸다. 새벽이 오도록 나무를 태우고도 타지 않는 것을 내내 바라보았다. 빨간 불길 속에서 얼굴을 붉힌 채 연기가 되어 살아질 것을 붙잡고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를 들었다. 불꽃이 사그라들면 다시, 나무를 넣고 낙엽을 던져 불길을 살렸다. 사라지고 살리다 보면 작은 흠집에도 아프지 않은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프면, 또다시 나무를 태우고 불길을 살리면 되겠다.
#3. 디어마이프렌즈
2016년에 방영한 '디어마이프렌즈'를 TV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었다. 이 틀 동안 정주행을 하며 눈이 붙도록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골이 딩딩거리고 뒷목이 뻐근할 정도였다. 9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드라마를 보는 시점이 달라져 있었다. 완이의 이야기보다 '엄마'의 이야기에 비로소 공감이 갔고, 눈앞에 삶을 맞선 엄마가 아른거려서 가슴이 미어졌다. 왜, 그토록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산 것이냐는, 멍청이 같은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그 막장 같은 삶을 이제는 알 거 같았다. 그저 그 시절을 산 모든 어른들이 떠올라서 아프게 울었을 뿐.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거 같은 할머니라는 이름도 부정하지 않았다. 내 곁에 할머니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때도 그 애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볼지 여전히 그 눈빛이 아플지 궁금해져서 반가운 마음으로 톡을 보냈다. 슬픔도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어느 것 하나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저 우린, 모든 여정의 삶을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벼락같은 슬픔에 엉엉 함께 울어줄 내 곁의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엄마! 진짜 고생 많았어! 나를 이렇게 예쁘게 키워 준 엄마가 정말 정말 대단해!! 진짜 멋지다!! 내 엄마!! 가정을 지키고 동생과 나를 키워줘서 고맙고 감사해. 엄마의 목덜미를 숨 막히게 끌어안고 말하고 싶은 단어들이 비로소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톡으로 "울지 마라, 나무해오께" 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슬픔이 와도 우린 웃을 수 있다.
#4. 초대장
소중하고 소중한 인연이 결혼을 한다. 드디어. 너무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식. 비혼주의자들과 딩크족들 사이에서 '결혼'에 소망과 희망을 품은 이들이 유별나게 특별하고 가치롭게 여겨졌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쟁 같기도 하고 달콤한 초콜릿 같기도 한 생활에 대한 '살아냄'에 선뜻 뛰어들라고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혼이라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게 되는 과정에 행복만 가득 담아 마음 모아 축하하고 무조건 잘 살아야 한다고 응원만 퍼붓고 싶었다. 사십이 넘은 중학교 때 친구가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는 결혼 초대장 톡을 세 번째 받고, 2025년은 참 감사한 해라고 꼬리말을 달았다. 붉은 얼굴로 하나 됨을 치르게 되는 의식을 시작으로 모든 생의 순간순간 '함께'라는 구속 속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의 다리를 잘 건너, 꾸준함이라는 노력과 인내로 제2의 인생을 잘 세워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예쁘게 만나요, 우리.
#5. Never ending story
스무한 살이었는지 스물두 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패'라는 단어를 부둥켜안으며 삶의 방향과 지표를 잃었던 때였다. 재수와 미대 준비로 미술학원에서 작은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이맘때쯤이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눈썰매장으로 견학을 갔었다. 정말이지 흰 눈이 가득했고, 볼이 상기된 채 위에서 신나게 내려오는 천진한 아이들을 살피며 추운 겨울을 버티던 시절이었다. 망나니처럼 버틴 시간들이다. 긴 터널 속에 갇힌 거 같은데,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젊은 날이었다. 온통 하얀 거 같은데 깜깜한 나는 어디에서건 누구와 건 어울릴 수가 없어서 자괴감, 열등감으로 눈두덩이는 점점 커져갔었다. 그 눈썰매장 안에서 아이들보다 더 큰 내 눈두덩이를 끌어안고 동그마니 서 있었다.
그 순간, 영화처럼 울려 퍼진 노래가 있었다.
'Never ending story'
그럴 때 있잖아요, 일부러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 말고, 진짜 시간이 멈춘 거 같을 때.
노래가 두 귀로 초고속으로 꽂히고 마음을 때리고 내 청춘을 흔들며 위로했다. 모든 카메라가 나를 비추며 돌고 있는 현상을 느끼고 바라보며 나는 별안간 울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던 터널에서 겨우 한 발짝을 뗄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을 줬던 노래. 나는 이 한 발자국이 너무도 간절했던 거다. 크고 넓은 하얀 세상에서 울면서 웃으며 서 있었던 내 유일했던 하얀 날. 청춘이라는 연료를 비로소 태울 수 있을 거 같은 작은 불씨. 쌓인 눈을 밟고 마침내 저벅저벅 나아갔던 길에 두 발자국이 힘차게 찍혔던 그날의 나의 노래였다.
당신에겐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가요?
우리의 이야기가 'Never ending story' 였네요.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