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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Jan 26. 2023

아무 생각

#1. 그립기만 한 시절

마음이 꼬꾸라지니 해가 바뀌어도 덤덤했다. 전 같으면 한 살을 더 먹은 것에 대해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했을 텐데 그것도 귀찮아질 만큼 마음이 쓰렸다. 쓰린 마음을 달랠 길이 없으니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잤다. 어느 새벽엔 잠이 도통 오질 않아 40도가 넘는 위스키를 연거푸 마시고 나니 취한 줄도 모르고 취해 버렸다. J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걸 깨달은 건 내 귀속으로 들려오던 익숙한 그의 남편 목소리 때문이었다. 파란 새벽에만 움직일법한 요정들의 시간, 단 잠을 깨운 것을 운운하지 않고 다정히 들려오던 목소리에 도리어 내가 당황했다. 긴 잠에 들었을 그녀는 새벽에 별안간 내 얼굴을 마주하고 시린 겨울의 음력 마지막 2022년 새벽을 보냈다. 그녀가 뒷 동에 살아서 천만다행이다.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해! 빵빵해지는 나이만큼 밑줄을 그어야 하는 행동거지가 늘어나서 나는 아주 가끔씩 서글퍼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젊어서나 했던 말을 마흔이 넘으니 그 말을 붙들고 온몸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닥쳐봐야 안다는 말이 딱 맞다.  



#2. 복직과 험담

2년의 휴직이 한 달 하고 일주일 남았다. 3월이면 '직장'이라는 곳에 다시 들어가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정해졌지만 정해지지 않기도 한 시간에 퇴근을 하고 텅텅 빈 통장은 노동의 대가로 차츰 통통해질 테다. 정해지지 않은 일을 매일같이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일이 힘들지 않겠느냐만은 나는 내 일만큼 '멀티스러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베짱이처럼 놀았으니 일개미가 되어보자 마음먹어 보지만, 비 규칙적으로 살았던 몸뚱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올라온다. 새로운 원장에게 내 능력치를 보여야 하고, 누군가의 험담으로 나라는 사람을 이미 판단한 사람에게 당신이 마음대로 새긴 나를 지우고 꼿꼿한 자세로 '나'를 보이기가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곳으로 꼭 복직해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하다가도 별 수 없지 않냐며 고개가 푹 숙여진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원장님께 문자를 보내고 다니, 우습게도 고개는 더 내려간다.



#3. 비밀스러운 여행

'돈'이 많아서 여행을 자주 가는 건 아니었다. 잘하지도 않는 SNS계정엔 여행과 운동을 주제로 한 콘텐츠와 인플루언서들이 가득하다. '행복'해만 보이는 그 사진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돈이 많아서 여행을 가는 게 아님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뭐, 개중에는 여유가 있어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행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이 보다 몇 배는 크다는 것. 하늘 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티켓을 끊었고 뒤로 두 번, 세 번 비행기를 탔다. 이틀 뒤면 네 번째 비행기를 탄다. 가급적 내가 딴 나라에 가 있는 것을 내 지인들이 모르게 한다. 처음엔 돈이 많아서 여행을 자주 간다는 착각을 할까 싶어서였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으나 그저 내 지인이 자신의 현실을 불쌍히 여길까 싶은 이상한 노파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니 저러니 이 부분에서는 나조차 왜 그러는지 싶지만... 여전히 그렇다. 미래를 염려하는 여러 선택지 중에 나는 지금의 '여행'을 선택할 때가 많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사는 방식일 뿐이다. 너와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방식대로 살면 그뿐이고 만일 '여행'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자꾸 망설이게 된다면 1%만큼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고 겸허히 받아들이면 된다.



#4. 동기와의 공통점

나는 나의 어두운 과거를 절친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편인데 만난 지 6개월 된 대학원 동기 선생님에게 때 묻은 내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크게 과장하지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고 가만히 들어주었다. 아이들 나이가 엇비슷해 3일 연속 만나고 나니, 깊은 속내까지 털어놓게 됐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편했다.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먼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놔서 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확 열렸다. 아이들은 안 보는 일상에서도 서로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친해졌고, 동생은 형을 잘 따르고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겼다. 공통점이 많다는 건 사이사이를 더 결속하게 만든다. 선생님과 나는 짧은 시간에 관계를 잇는 사이사이를 공통점으로 촘촘히 채웠다. 거추장스러운 말보다 그 공통분모들이 더 위안이 됐을 테다. 많은 공통점 중에 하나를 꼽자면 이거다.

  "내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착하고 어른들한테 잘하는데요, 재미는 없어요"  

술담배를 즐겨하지 않고 바깥으로 돌지 않은 거만큼이나, 우리는 이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5. '더 글로리'

  "내 아이가 저런 꼴을 당하면, 당장 나는 교장부터 만나고 학교를 뒤집어 놓고 모든 가해 학생들과 그 부모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더 글로리'를 보고 내가 한 말이었다. 무식한 소리를 내뱉고 나니 오분 뒤 얼굴이 화끈했다. 말처럼 쉽지 않고 단순하지 않은 게 현실인데 나는 또 감정이 앞섰다. "그 보다 더 한 일도 학교에선 벌어지나요?" 뒤이어 물었다. "살인도 일어나니, 글쎄요... 그보다 더 한 일일까요?" 질문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화제의 중심에 선 드라마를 두 번 돌려 보기를 했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그 적나라한 연기들이 소름 끼쳤고 타들어가는 고통을 노리개로 여기는 그 웃음의 심상이 궁금했다. 세상엔 잔인한 영화도 끔찍한 소설도 많은데 유독 나는 이 드라마에서 현실 감각 같은 게 깨어나 종일 팔뚝을 긁고 심장을 조였다가 부풀렸다가 유난스럽게 굴었다. 사람은 내가 겪은 고통에 격한 공감과 분노를 품는데 나도 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내 영혼을 갉아먹고 서서히 파멸시키는 일...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와 예측 불가능한 공포의 도구들에 놓여 있다 보면 하얗게 번쩍이는 식칼보다 무섭게 변해버린 내가 서 있다는 거다. 이쯤 되면 '사람'이 가장 무섭다.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어요. 페미니즘을 옹호하며 내가 했던 말인데, 그런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여자라서가 아니고, 원래 인간은 그 옛날부터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고 빼앗고 폭력을 행사했어. 그게 인간의 본성이야"

5명의 무리에 들지 말고 고통받는 한 명의 영혼 옆에 반드시 서 있으라고. 너는 그렇게 한 명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고. 불행한 그 영혼의 손을 잡아 주라고. 그 고통에 반드시 함께 하라고. 나는 내 아이가 5명의 무리에 드는 사람이 될까 봐... 사실 그게 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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