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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Sep 20. 2022

결국 '상담심리' 공부를 해요.

'답'을 찾지 않기로 합니다. 

 일열로 나란히 앉은 사람들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숨 막힌 긴장감은 실로 오랜만이다. 살면서 이런 긴장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취준생이라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주먹만 한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어 입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거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느끼며 화가 난 건가 싶은 A대 교수님들의 눈을 쳐다봤다. 첫 번째 면접은 과잉 긴장상태로 설명이 필요 없이 그저 망했음을 고백한다. '감사합니다'로 끝맺음을 맺고 도대체 내가 뭐라고 떠들었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오늘의 망함은 오늘과 내일의 이불 킥으로 앞으로 열 번을 더 곱씹고 또 곱씹으리라는 것을 안다. 부끄러움과 상기된 얼굴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것도. 


 마시는 우황청심환이 있다는 걸 안 건 두 번째 면접에서다. 한 시간 전에 마신 우황청심환 때문인지 첫 면접 때보다는 다소 약해진 심장 박동을 느꼈지만 여전히 쿵쿵 소리를 내며 뛰는 심장이 거슬리긴 마찬가지. 더 촘촘히 엮은 지원동기를 말하고 쪽지에 적힌 이론을 손을 듣고 답하는 형식의 면접은 지나치게 딱딱했다. 유쾌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부러 조성할 필욘 없지만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도 부러 조성할 필욘 없지 않나. 마지막 추가 질문이 끝나자 잔뜩 얼어 있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그제야 부드러운 인상으로 말한다. 

  "긴장 좀 풀어요. 워낙 경쟁률이 심한 과라 떨어졌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또, 실패의 잔을 마신 거 같은 기분은 여지없다. '불합격'을 더 염두에 두라는 말 같기도 했으니.      


*지원동기 1분 이내 

*전공 이론 질문(개인)-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치료 '훈습', '쾌락 원리', 벡의 인지치료 '비합리적 신념' +추가 질문: 학업 후 상담교사로서의 계획                

*공통 질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생활양식', 게슈탈트 이론 '알아차림과 접촉'


 두 번째 지원은 예비합격, 세 번째 지원 역시 불합격. 상담 심리를 향한 열정 있는 교사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정말 몰랐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채 일목요연한 정리를 머릿속에 넣어 멘탈을 통제하고 앉아 있는 지원자에게서 단호하고 무섭기도 한 의지가 풍긴다. 세 번을 떨어지고 나니, '꼭 가야겠니?' 내가 묻는다. '상담심리'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주변인들의 말과 너와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심리'학'은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분석하는 통계 쪽에 더 가깝다는 말, 그러니까 어쩌면 지나치게 감성적인 네게는 어려워서 힘들 수 있다는 간결한 이유였다. 미래의 내 고생을 염려하는 말과 함께 이제 비주류에 가깝다고 조금 더 창조적이고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내가 가진 장점을 사용할 수 있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는 친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테면 상담보다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놀이치료 쪽으로. 오히려 위로 보다는 현실 조언에 가까운 말들이 나를 더 똑바로 보게 했다. 눈물을 머금고 슬퍼만 하기에는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민하기에는 오늘의 1시간이 더 귀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친 척하지 않고 고민 없이 잡을 때 내 것이 된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D대 신입생 모집을 본 건. 삼일이 남은 상황이었고,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우연한 계기는 아무 생각 없이, 생각 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일 때. 이런 가벼운 마음일 때 찾아온다. 지원서와 서류를 준비하는데 이틀, 빠른 등기로 딱 3일 만에 접수했다. 면접 준비는 추가 이론 공부가 아닌 긴장하지 않고 '말하기' 연습 위주로 준비했다.


*지원동기: 간단한 자기소개, 상담심리를 공부하려는 이유와 목표, 이 학교에 지원하는 이유  

*전공 이론 질문- 상담에서 구조화란?, 게슈탈트 이론의 '알아차림과 접촉',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상담자의 윤리에서 '비밀유지'를 파기할 수 있는 경우는?, 인지치료 벡의 'ABC 모델'  


면접 대기 장소에 들린 교육 대학원 원장님의 좋은 결과를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힘입어 약간의 긴장이 녹아내렸다. 사실, 면접은 인성위주로 본다는 공지를 믿고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갔는데, 이론 질문이 거침없이 쏟아져 당황스러운 마음을 급하게 감췄다. 4번째 면접이라 머릿속에 잔존해 있는 이론을 끄집어냈고, 면접 30분 전에 이유 없이 들춰보고 싶었던 상담자의 윤리를 끝으로 책을 덮었다.   


  나는 옛날부터 한 우물만 파는 경향이 있었다. 고등학교 땐 4년 동안 한 입시 학원만 내리 다녔고, 직장도 웬만해선 잘 옮기지 않고, 입시 땐 오로지 한 대학만 써서 주변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3잔의 고배 아니 2년 전에 특수교육에 지원했다 지원 미달로 면접조차 보지 못한 경험을 합치면 4잔의 고배를 마신 A대와는 연이 닿지 않은 것이라고 매조지었다. 기대에 찼던 마음이 한 풀 꺾여 낙심에 낙심을 거듭하니, D대의 합격 소식이 덤덤했다. 결국 나는 2년의 휴직 기간 중 3번의 도전 끝에 복직 6개월을 남겨두고 대학원생이 되었다. 




 명절 때만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시누이와의 만남은 늘 즐겁다. 빨간 머리 앤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여성상. 긴 생머리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예뻤던 언니를 많이 좋아했다. 소개팅남의 누나가 동경의 대상인 언니라서 닮은꼴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덕분에(?) 그도 좋았다. 미래에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남편과 언니와 나는 1년 동안 한 고등학교에 다니며 졸업을 했다. 

D대의 합격 소식을 듣고 호탕하게 웃던 언니가 자신의 전공책을 모조리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과제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조언을 했다. 수다의 내용은 명태전, 동그랑땡, 두부전이 익어갈 때마다 달라졌다. 두꺼운 녹두전이 익어갈 때쯤은 나의 가난한 시절이 화두가 되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됐다.  


살면서 느낀 고통과 아픔은 모두 밑바닥에 깔린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는 이유를 들먹거리며 현실의 문제는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매일을 같은 이유로 힘들어했다.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심연 깊은 곳에 있는 상처마저 길어 올린 채 '나' 혹은 '자아'에 꽂혀 있다는 걸 가족들은 알고 있다.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하고 이미 새 살이 올라온 곳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긁어 그때만 큼 여전히 너는 아프냐고 되묻고는 스스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상실과 우울의 늪에 허우적거리길 택한다. 여러 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그 모든 것들로부터 괜찮아지고 싶어 여러 대상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문을 두드리며 답을 찾았다. 그런 행동을 멈추라고 시누이가 아닌 시매부가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다. 대학원에서 '답'을 찾지 말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해서 나는 하얗게 놀라 버리고 말았다. 나는 정말 '답'을 찾고 싶기도 했으니까. '자아' 찾기 숨바꼭질을 하다가 현실로 재빨리 돌아오라는 말까지. 

 

육체의 고단함에 쓰러지더라도 '마음'이 고단하여 쓰러지는 일은 없도록. 

마음이 튼튼해지도록, 버릇처럼 끌어올리던 불행하기를 멈춘다. 


두서없이 쓴 글은 뒤로 밀어 두고 벌써부터 내년이 걱정이네.




아! '개쓰레기 같은 학교 가지 마' 남편의 말에 불합격의 슬픔이 물러갔는데, 시매부가 "거기도 누군가의 와이프가 다니는 학굔데 너무 한 거 아냐" 뼈 때리는 말에 작게 반성하며 누군가의 와이프님들께 소소한 사과를 전하기로. (아니, 근데 이 날 우리 시매부가 팩폭을 계속ㅠㅠㅠㅠ 아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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