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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Aug 29. 2022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  

내 인생에 운동이라는 항목

  스무 살 때였다. 고등학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처음 만났던 애인은 카페를 나와 내려가는 계단에서 나를 앞에 두고 불쑥 말했다.

  "너 수영했었어?"

  "아니, 왜?"

  "어깨가 넓어서"

타인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신체에 대한 평가였다. 당시 좋아했던 애인에게서 들은 그 말은 나를 단정 짓게 했다. 어깨가 넓은 여자. 그래서 싫다는 건가. 찝찝함을 남긴 채 우린 복잡할 만큼 시시하게 끝났다. 그 뒤로, 종종 남자들은 내게 '키가 작다' '엉덩이가 예쁘다' '얼굴이 작다' '쌍꺼풀은 없지만 큰 눈이다'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남자들에게 내 모습이 가급적 예쁘게 비치기를 바랐던 때가 있었다. 그 생각은 맹목적이었고 초라한 집착이었다. 데이트를 앞두고 거울 앞에 한참 서있는 내게 엄마는 매번 같은 말을 했다.

  "얼굴에만 분칠 하지 말고 네 방도 좀 치워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와 쌓인 먼지보다 내 얼굴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때였다. 어떻게 하면 예뻐 보일까. 어떤 옷을 입어야 나에게 반할까. 사실 그런 부질없는 집착은 내 결핍을 가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불운한 가정환경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휴직과 동시에 매일 아침 9:00 운동을 갔다. 매일 꾸준히 실천한 일이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스무 살에 파열된 디스크 때문이었고, 지금까지 종류를 바꿔가며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중에 하나였다. 엄지발톱으로 내려오는 무감각한 신경과 바깥 허벅지에 퍼지는 기분 나쁜 통증을 없애려 물리치료, 한방치료는 물론 신경주사를 여러  맞았고 이제는 달고 사는 액세서리처럼 익숙해졌다. 디스크 환자에게 있어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태어나 처음 시작한 운동은  남자 친구가 수영했냐고 물어 왔던 '수영'이었다. 지금의 남편이 디스크엔 수영이 좋다고 권유해서이기

했다. 그러니까  어깬 수영 때문이 아니고 엄마에게 물려받은 유전이다. 당시의 남자 친구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은 뒤로 동생과 엄마의 어깨를 유심히 살펴보니  벌어진 어깨는 엄마로부터 왔음을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 가족은 어깨 깡패였어"

  "맞아 언니, 나도 어깨가 넓잖아" 


  코로나로 2년간 강제로 쉰 운동을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자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운동이 끝나면 소독수가 뿌려진 물티슈로 자신이 사용한 기구를 닦고 입을 가린 채 운동실을 빠져나왔는데, 서로의 눈만 보는 게 익숙해진 탓에 되려 입을 보면 멈칫거리게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마기꾼'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니, 혹여나 나도 마기꾼인 가 싶어 마스크를 벗는 게 꺼려지게 되는 이상한 상황에 주춤거렸다.


  작년 가을 즈음부터는 1:1 Personal training을 받았다. 디스크 통증을 호소하던 내게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은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만만치 않은 수강료를 세 번씩 지불하며 더디게 변하는 내 몸을 관찰하는 일은 꽤나 보람된 일이었다. 디스크 통증을 최소화하고 뒤틀린 내 몸을 바로 잡고 코어 힘과 내 몸의 근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늘어 가는 근력만큼이나 내면도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올봄엔 덜덜 떨며 마지막 수강료를 지불하고 '바디 프로필'을 목표로 운동을 시작했다.   

 

  처절하기까지 한 식단과 고강도 운동을 3개월간 지속하며 내가 느낀 것은 역시, 나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면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서서히 변해가는 외적인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안에 내적인 문제가 더 도드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만이 느끼는 내면의 내가 부각되고 있는 것을 천천히 지켜봤다. 동시에 건강한 내면을 갖고자 애써야 함을 또,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자는 두 가지 마음에서 서성거렸다. 비척비척 걷는 와중에도 휘청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단단해지는 내면을 느끼기도 했으니, 내 운동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 설정한 몸무게보다 1KG을 더 감량한 뒤,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 훌쭉해진 내 모습을 처음 본 엄마는 바람 불면 날아가겠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농담을 했다. 인생 몸무게를 기록하고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스스로 만족하고 나니 타인의 말은 중요하게 들리지 않았다. 지인들의 찬사보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제일 크게 다가온 일은 생소한 감정이었다. 스스로를 추앙하는 일.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고 나니 참 괜찮아 보이는 내가 서 있다.  




한 달 동안의 변화 과정 '비나이더'

 하루에 기본 2시간 운동 많게는 3시간씩 운동(필라테스 포함)을 했다. 바프 한 달을 앞두고 40~60분가량 유산소 운동을 더 했다. 매일 밤 복근 운동을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복근 운동은 힘으뜸님 유튜브 시청) 살은 생각만큼 빨리 빠지지 않았다. 특히 지방이 없는 상태에서는 변화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면 '식단'이 반드시 필요하고 정해진 양만큼을 먹고 강도 센 운동이 들어가야 몸에 근육이 붙고 지방이 빠진다고 피티 선생님은 귀에 딱지가 않도록 이야기했다. 식사는 거르지 말고 정해진 분량만큼 꼭 먹어야 그 에너지로 운동이 가능하다고. 3개월 동안 코치님께 매일 같은 문자가 왔다.

  "식사 잘 챙기세요"

  "오늘 체중은 어떻게 되나요?"

  

운동 후 변화 과정 '비나이더'
3개월 간 식단

 

식단은 현미밥으로 시작해서 한 달 반 지나서는 고구마 100g과 단백질 100g 야채는 한 줌만 먹었다. 매 끼 아몬드 다섯 알씩(사실 기준치보다 더 많이 먹었다.), 김치는 꼭 먹기. + 종합비타민, 유산균. 오메가 3까지 챙겨 먹으라 했지만 구입하지 못해 먹지 못했다. 운동보다 더 힘든 것은 식단을 지키는 것이었다. 정해진 식사만 하는 것은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신경질이 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식사 시간만 되면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식단에 불만을 보이는 내게 피티 선생님은 "그래도 맛있지 않나요?" 되물었다. 정말 맛있어서 부인할 수가 없었다. 막판엔 하루에 서너 알씩 사탕을 먹었다. 무설탕 커피 사탕과 당도 높은 외국산 커피 사탕(이름이 생각 안 나요)을 번갈아가며. +매일 밤엔 먹방을 시청했다. 먹방을 보는 나를 의아해했던 남편은 끝나면 마음껏 먹으라 했지만 바프가 끝난 지금, 여전히 나는 먹방을 시청하고 마음껏 먹지는 못하고 있다. 마음껏 먹진 않지만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도 한다는 사실.


베스트 컷 만 올리기


 많이 많이 부끄럽지만 올려 보는 나의 바디 프로필 사진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뿌듯함이 종일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작은 것이라도 이룬 것이 있나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중간에 포기했던 일이 더 많았다. J는 너처럼 독하지 못해 자신은 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각자 가진 접점이 있을 터. 고통을 이기고 딛는 그 접점이 다를 뿐.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우린 모두 다른 그 접점을 가지고 있을게 분명하니까.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긴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만 했다. 그것도 단 몇 주만 남겨두고서. 나를 설명하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였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그런 배려를 요구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겠어? 바프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못 해서 몇 번의 술자리를 가졌다.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다. 너는 왜 그런 성격을 가졌냐고 나를 탓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가진 성격이니까. 바프를 준비할 때 식단을 어기는 것은 걸어오던 길에서 다시 뒤로 한 발짝 물러 나는 것인데, 뒤로 물러난 만큼 다시 배로 운동을 해야 한다. 배로 운동을 하는 것보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해가며 내가 오늘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게 더 고역이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기세 코치(비나이 더 트레이너 선생님)가 더 힘들었을 터. 바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남편밖에 몰라요, 했을 때 그는 아마도 많이 놀랐을 테다.




 바프를 찍고 눈에 띈 큰 변화는 꽉 맞았던 옷들이 헐렁해져서 몸에 예쁘게 잘 맞는 나를 거울로 보는 일이다. 꽤나 만족스럽다. 내 몸의 단점이든 장점이든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은 마음가짐과 커 보였던 어깨가 운동을 하고 나니 예뻐 보인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덤이다. 기세 코치는 운동으로 다져진 내 어깨가 신체 중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나는 그 말이 상처였다.


  "운동을 하고 나니 신체에 자신감이 생겼어요"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자신감만이 운동이 가진 큰 장점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운동을 하는 것 또한 나를 탐구하는 과정 중 하나다. 단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어 장점으로 만들고 신체의 연약한 부위에 힘을 싣는 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 습관적으로 우울해지는 사람에게 일상의 환기를 주는 일. 결국엔 내면에도 근육이 붙는 일.  


그래서 오늘도 헬린이는 헬스장으로 간다.    




덧!

며칠 전 바프 사진을 보고 놀라 연락해 온 지인이 내 바프 사진보다 코로나에 안 걸린 사실을 더 놀라워하며 신기해했거든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코로나행 막차 탑승했어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코로나가 운동의 방해꾼이 맞아요.

20시간 자고 났더니, 너무 멀쩡해서 코로나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예요.

하도 콧구멍을 찔러대서 콧구멍이 더 아프더라고요. 코가 사라질 정도였어요.  

지금은 두 시간도 운동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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