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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코까지 올려 쓴 마스크 위의 눈을 마주 하지만 얼굴을 알지 못한다. 웃을 때 입고리의 모양과 말하는 입의 생김새를 모른다. 나를 등록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엄지와 검지를 벌려 얼굴을 확대한다. 아, 이렇게 생겼구나. 내가 그려본 이미지와 사뭇 다르네, 여운을 남기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내 눈만 본 이들은 내 얼굴을 어떻게 그렸을까. 마스크로 가리어질 얼굴에 꼼꼼히 화장을 하고 입술을 칠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일상이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입술에 색을 입히고 마스크를 쓴다.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마스크엔 그날의 립 컬러가 묻어 있었다. 마스크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릴 때마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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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던 혼돈의 일상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때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는 길고 지루한 휴원과 휴관을 반복했다. 계획되어 있었던 행사와 교육, 평가인증을 쫓기듯 줄줄이 취소하고 30명도 채 등원하지 않는 아이들과 하루를 버텨냈다. 공포에 떨며 다수가 모이는 교육기관에 아이를 보낼 수 없었던 학부모들은 매 달 빠져나가는 물질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매주 하나씩 수업자료를 만들어 택배로 부치고 나면 고된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매 달 꼬박 월급을 받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다. 시간대별로 나눠 밥을 먹고 칸막이를 설치하고, 이제 말을 땐 아이들의 입을 마스크로 가렸다. 또래를 만나 어울려 놀아야 하는 나이의 아이들은 마스크에 묶여 그 무엇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다. 주고 받는 대화로 말을 배워야 하고, 각자가 가진 말의 소리를 인식하고, 입의 근육을 움직여 소통해야 하는 유아들은 점점 말을 잃어 갔다. 두꺼운 마스크를 뚫고 나와야 하는 소리는 시끄러운 교실에서 분별해 내기가 어려웠고,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점점 혼자 놀이하는 것이 편해져 갔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기관에 머무른 아이들의 마스크엔 침이 흥건했다. 눈으로 입의 모양을 보고 웃는 얼굴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달아 갔던 하루하루였다.
비말로 전이되는 바이러스를 예방하고자 마스크를 꼬박 3년째 쓰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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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 수가 되고, 종교단체에서 감염된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하자는 문구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모두가 노력하면 일상을 되찾고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1년이 지났고, 또 1년이 지났다. 바이러스는 더 진화했고, 다른 모양의 바이러스가 생기고 새 이름의 바이러스가 일상을 강타하고 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는 곳으로 날아오는 확진자 수치는 천명을 넘기고, 하루 9만 명이 넘는 수치가 이제는 네 차례라고 집 앞 문을 두드리는 거 같다.
'주변에 확진자가 없으면 친구가 없다'라는 웃픈 기사를 읽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주변에서 확진 소식이 들려왔다. 마스크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집 외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절망과 개탄스러움. 답답하고 지겨운 일상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어 무기력함과 함께 우울감이 증폭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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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면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하루 중 기분이 제일 좋을 때다. 그 기분을 유지한 채 잠들고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이틀을 보냈다. 수요일엔 친구와 과거에 주고받은 카톡을 보며 배꼽을 잡고 구르며 웃다가 우울하기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야채를 썰어 볶아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흰밥을 해서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내내 집안에만 머무는 것도 속이 상해 내일은 어디를 좀 가볼까, 생각이 들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을 닦았는지 매번 확인하고 마스크가 내려가면 올려 쓰라는 말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 나를 보자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코로나 보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갈 거 같아"
주변 사람들의 확진으로 정신없는 친구의 일상을 듣다 툭 적어 보냈다.
"또라이도 같이 되장"
고마운 처방전에 눈물이 찔끔 올라왔다.
카페를 끼고 있는 궁전 같은 집으로 놀러 간 친구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따뜻한 밥을 대접할 수 없던 s가 꿈에서 밥 대신 20만 원을 건네는 묘한 꿈을 꾸고 전화를 해봐야지 해놓고는 내내 미루다, 먼저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확진으로 격리 5일째라고 말을 하며 거친 기침소리가 이어졌다.
꿈 이야기를 듣더니 "거기도 코로나냐" 하며 웃는 소리가 하도 경쾌해 우울한 기분마저 가셨다.
남편 없이 세 아이와 어떻게 지내는지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시댁에 피해 주기 싫어서 아픈 몸으로 열이 났던 셋째를 돌봤다면서... 곧 얘도 걸리겠지, 목소리엔 지긋지긋한 삶에 대한 원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배달 음식을 시켜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고 장갑을 끼고 새벽에 밥을 해 놓고 안방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둘째를 볼 수 없으니 각자의 방에서 영상통화를 하며 얼굴을 본다고. 한 날은 여느 때처럼 통화를 하는데 딸이 말이 없어 왜 그러냐 재차 물었더니 대뜸 펑펑 울어 버리는 딸을 보고 함께 울었다는 말을 들었다. 해줄 게 없는 미안함과 안타깝고 짠한 마음에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해내지 못할 일을 너는 해내고 있다고. 몸보신 좀 해줘야겠다며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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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코로나고 뭐고 어디든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날 수 없어 끝없이 우울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롱 패딩을 다시 꺼내 입으며 그만 따뜻한 나라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감염에 대한 염려 없이 여행자들과 다닥다닥 붙어 생소한 그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시답지 않은 여행을 전처럼 누리고 싶었다. 여행 가능한 나라를 검색하고 잠깐이라도 머물다 올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헤아리다 마음을 접고 나면 눌러 놓은 우울이 또 고개를 내밀었다. 고작 3박 4일이라도 몇 시간을 날아 다른 나라에 갔다 돌아오면 다시 삶을 대차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은 용기가 생기고는 했으니까.
견줄 수 없는 현실을 사는 건 친구뿐이 아닐 테다. 고작 이 정도의 이유로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씁쓸하고 미안한 마음이 돌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본다. 내게도 내 가족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모두에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바이러스를 끝끝내 이겨내면 다시 평범했던 일상과 자연스러웠던 여행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언제쯤 당도할지 몰라 기다림에 지쳐간다. 그것이 '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가도 바이러스가 문을 두드리고, 잇달아 오는 확진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고 있는 나날을 보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루가 내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