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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Sep 24. 2021

방. 문.

작고 소중했던 방을 나오기 위한 준비와 정리를 하고 있다.

사실, 여전히 내 작은방에서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조용히 들어가 수북이 내려앉은 먼지를 가끔씩 걷어 내고 작고 예뻤던 기억의 편린들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다 간다.

그러다 종종 슬퍼지곤 했다.

언제나처럼 난 혼자였고, 무엇이든 누구든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혼자 남겨진 사실에 상실감이 잔뜩 밀려와서.


살면서 점점 명확해지는 많은 것들 중에

나는 '고유한' '유일한'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나를 '방문'한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 하는 거다.

나.라는 방에서 한참 머물다 간 사람들-


그들은 나의 맹목적인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독특함이 익숙해지지 않다거나, 감성적인 나를 위한 답시고 떠나기도 했다.

늘, 나는 방에 홀로 남아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처연히 바라본다.


아주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던, 변하지 않고 모든 게 그 자리에 있었으면 했던 작고 소중했던 내 방-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두고 등을 돌리고 다시는 열지 말자, 다짐하는 것이 어려워 자꾸 서성이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선다.

발끝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온다.

이별은 슬프기만 하다.


작년 여름 그 일이 있은 후로, 더 많이 방문을 열었고 있을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머물렀다.

아빠 호주머니에서 나온 영수증이 엄마의 손에 쥐어진 뒤로, 어느 것 하나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채(20kg 넘는 옷가지들이 여전히 현관에 있고,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카드가 여전히 지갑에 있다)  자꾸만 올라오는 고함을 틀어막으며 여름과 가을, 겨울을 무심히 지나왔다.


가슴 언저리에 체기가 가시지 않는다.

또다시, 모든 것을 저버린 것에 울화가 치밀어 도망치듯 방문을 자주 열었다.

고개를 처박고 서럽게 울다가 모든 것들을 멈추고 사진 속, 내가 되고 싶어 미친 사람처럼 웃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방문을 닫고 나왔다.


많은 업무들을 무리 없이 해내고, 가족과 맛있는 걸 먹고, 사소한 것에 웃고 즐기고 싸우기도 하는 유난스럽기도 한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모두가 잠든 밤 도둑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 서럽고 불행한 눈물을 쏟았다.


작고 소중했던 방을 나오기 위한 준비와 정리를 하고 있다.

아니, 해야 한다.


어른답게 용서하고

어른답게 이별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용서하는 대신 침묵하고 외면하는 중이고,

이별하는 대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안부를 묻는다.


모든 게 새로워 낯설기만 한 2021년의 봄의 초입과 겨울의 끝에서 정리가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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