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무릉도원을 아시나요?
영월 무릉도원면엔 꽃피는 200년 된 가옥이 있다. 옛것을 허물지 않고 세월을 이긴 가옥은 마음씨 고운 사모님의 손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어느 곳 하나 사랑이 베이지 않은 곳이 없어 혹여나 내 사랑이 부족한 건 아닌지 조바심이 이는 곳. 작년 늦여름, 올봄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 창호문을 열면 멀리서 넘실거리는 안갯속의 산등성이를 따라 새들이 합창을 한다. 일상의 소음이 멈춘 공간 안엔 귀 속으로 파고드는 새소리와 아침을 여는 살아있는 자연의 소리만 생생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막 깨어난 식물들의 소리, 입을 한껏 벌린 튤립의 소리. 눈곱도 떼지 못한 얼굴로 마당으로 나오면 라일락 냄새가 뒤통수에 따라붙어 인사를 건넨다. 결국 그 향기에 붙들려 꽃잎 앞에서 코를 킁킁거렸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
오래된 대문을 열고 들어선 첫날,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진정으로 '멍' 때리는 쉼을 누렸다. 대문과 마주 보고 있는 대청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앞에 두고 어둠이 내린 고요함 속에서 마음속 요동이 멈추는 걸 경험했다. 귀뚜라미와 풀벌레가 울던 밤. 초록 생명들이 밤을 밝혔던 밤. 나는 아주 오래 멍해졌다. 내가 지금 어디인지 더듬더듬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꽃잎으로 떨어지는 짧은 여정을 지켜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빗물 샤워를 마친 식물들의 시원함과 개운함이 내게까지 전해져 비가 온다고 툴툴거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빗소리와 함께 김치전이 노릇하게 익어가는 소리가 하모니가 되었다. 달달한 막걸리 한입과 매콤한 김치전이 입안을 채웠다. 빗소리와 김치전의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그 공간엔 그런 소리들 외엔 어떤 소리도 없었다.
장작이 타들어 가던 소리 위로는 솥뚜껑에서 삼겹살이 익어갔다. 뒷마당에서 뜯어 온 상추를 씻어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저녁으로 먹었다. 얇게 자른 감자를 솥뚜껑에 구워 후식으로 먹었다. 장작은 밤공기 안에서 내내 타들어 갔고, 나는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비워진 막걸리 병과 흰 우유가 꽉 찬 행복이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지만 사실 모든 게 채워진 공간 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놀았다. 집 앞 개울에서 바지를 걷어 올려 소라와 고동을 잡는데 열을 올리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쓰며 한나절을 보냈다. 조용하게 놓인 낮은 지붕들 사이로 커다란 늙은 호박과 호박꽃을 처음 보았다. 개가 짖으면 깔깔깔 웃으며 도망을 쳤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오후엔 뒷마당 마루에서 열댓 마리의 고양이들이 낮잠을 잤다. 숨을 꾹 참고 고양이를 깨우지 말자고 약속을 하며 우린 살금살금 숨을 쉬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작은 소리에도 눈을 뜨던 고양이는 우릴 한 번 쳐다보고는 금방 단잠에 빠지곤 했다. 나는 작은 종이에 낮잠을 자던 고양이를 그렸다.
마지막 날 밤, 사모님께 하루만 더 묵을 수 없냐고 부탁을 드렸다. 아쉽게 1년 치 예약이 꽉 찬 상태라 나는 귀한 하루를 더 가지지 못했고, 속상함에 눈물이 돌았다. 미안함을 떨어뜨리며 마당을 나온 사모님의 그 발걸음이 감사했다. 직접 짠 들기름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던 날, 다음 방문을 나와 약속했다.
4월 방문을 예약한 날, 문자가 왔다.
"튤립이 예쁜 계절에 다시 뵈어요. 가시오가피 나물도 무쳐 드실 수 있는 시기네요. 두릅도 잘 키워두겠습니다."
다정한 사모님 문자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오늘 저녁엔 안주로 두릅을 데쳐 드셔 보실래요?"
두릅나무에서 두릅을 땄다. 직접 딴 두릅을 데쳐 새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그리웠던 냄새가 올라왔다. 친정 아빠는 종종 두릅을 사 와 데쳐 먹곤 했다. 엄마는 데친 두릅을 먹어 보라고 했지만 한 번을 먹은 적이 없었다. 먹지 않아도 어쩐지 입에서 쓴맛이 나곤 했어서. 남편과 나는 데친 두릅을 모두 먹었다. 거부감이 없는 곳에선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던 음식도 먹게 한다.
친할머니가 계셨던 시골집은 이보다 작은 집이었다. 그곳은 매년 무릎까지 눈이 내렸다.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잠바를 입고 볼이 빨개진 채 눈을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붕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 아랫목에 앉아 얼얼한 손을 연신 비벼댔다. 엉덩이가 데일 정도로 뜨거웠던 아랫목에 앉아 고구마를 까먹거나, 작은 은상에서 김치를 올려 밥을 먹었다. 친할아버지의 양손에 들려 있던 꺾어진 나뭇가지와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진 신발들. 나는 어쩔 땐 그 초가집 풍경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사모님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뜨끈뜨끈 데워 주신다. 그 옛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지붕에서 김이 모락모락 장작 타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초저녁의 냄새와 진한 풀 내음이 공간을 가득 메우면 우린 늘 그렇듯 뒷마당 솥뚜껑에 장작을 태웠다. 장작 사이에서 포일로 싼 고구마를 넣고 어떻게 하면 고루 잘 익는지 남편과 입씨름을 했다. 포~옥 익어야 제맛이 난다는 남편은 이르게 꺼낸 내게 핀잔을 주었다.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아이들은 달 빛 아래에서 캐치볼 놀이를 하며 투닥거리고 번갈아 토라지다 사이좋기를 반복하던 밤이었다.
평소 아무리 한잔만 하라는 내 말도 주변 사람의 말도 듣지 않던 남편은 이곳에선 막걸리도 와인도 홀짝홀짝 마시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사모님께 전수받은 가시오가피 전을 부쳐 낮막(낮에 먹는 막걸리)을 했다.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한 낮이었다. 경직된 마음을 풀고 만면에 미소를 띄워 가족사진을 찍었고, 종일 캐치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텃밭을 가꾸고 식물과 나무를 돌보는 사모님을 졸졸 따라다녔던 딸, 재잘재잘 말을 하면 다정하게 대답하는 사모님의 목소리는 부엌에서도 들렸다. 아이의 천진함을 예뻐해 주시고 때 묻지 않았다고 볼을 꼬집던 사장님의 손끝에 진심이 묻어 있었다. 대 낮에 나눈 짧은 수다엔 아이들이 잘 되기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이 어려 있었다. 돌아가는 날 아이들에게 용돈까지 쥐어 주시던 사장님. 스쳐 지나갈 수 있었던 손님에게 마음을 내내 보여 주셔서 나는 그 가옥을 더욱 사랑했다. 두 분이 만들어 내는 공간에는 하나하나 모든 소품과 물건과 자연에까지 정성과 사랑과 진심이 담겨 있었고, 결국 그것이 그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쩜, 아침마다 새들이 노래를 해요?"
"음치도 있어요! 꽥꽥 소리만 지르는 하하하"
"지겹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부족해요! 부족해!"
주천강을 따라 초록길을 달렸다.
다음엔 조금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라며.
쉼이 필요한 친구들과 함께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