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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Jun 17. 2022

적당한 불행이 닥칠 때

#1 마침, 비가 온다.

  결혼 전에 살던 곳은 매년 5월이 되면 철쭉이 한창이었다. 그곳 철쭉동산은 꽤 유명해 타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곤 한다. 임신 중에, 쌍둥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철쭉 동산을 산책 삼아 걸으며 5월을 보내곤 했다. 집 앞 동네, 잎이 마른 철쭉에 눈길이 머문다. 활짝 핀 꽃잎이 쭈글쭈글 시든 것을 보고 쨍쨍한 하늘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본다. 매서운 뜨거움이다. 말라서 죽어 버린 철쭉을 매일 아침마다 지나치며 운동을 간다. 여태 비가 오지 않았음을 그제야 느끼며.


#2 진동에 휴대폰이 가늘게 움직인다.

 영아 전문 교육이 3주 차로 접어들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 줌 교육을 듣는 것은 생각보다 곤욕스러운 일이다. 점심시간 10분 전, 핸드폰이 가늘게 떨린다. 엄마다. 시계를 다시 쳐다본다. 이 시간에 엄마가 전화할 일은 없는데. 통화버튼과 스피커폰 버튼을 빠르게 누른다. 이미 많이 울어 눈도 목울대도 젖어 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퉁명스럽지 않고 슬픔에 찬 목소리. 다정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전한 소식은 외삼촌의 부고 소식이었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은 당혹감과 고통을 함께 수반한다. 과속운전을 한 트럭이 마침 오토바이를 탄 외삼촌을 치고 멈춘다. 외삼촌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모습은 어땠을까. 쿵. 드라마에서나 봤던 모습. 엄만 아주 오래오래 울었다.


핸드폰 너머로 "수진아"라고 부르는 외숙모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예측하지 못한 숱한 세월을 살아내셨음에도 갑자기 도래한 슬픔에 온 마음을 두들겨 맞고 늘 그랬듯 잠잠히 이겨내는 목소리에 이고 견뎌온 세월이 느껴진다.

통화는 엄마에서 외숙모, 셋째 외삼촌으로 이어진다.

30년을 뛰어넘은 익숙한 목소리.

“수진아, 행복하게 잘 살지?”  “수진아, 행복하지?”  재차 묻는다. 단단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듯.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는 슬프고 다정하다.

“네” “그럼요” 그. 럼. 요. 단단한 확인으로 재차 응답한다.


#3 *대학원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하고 싶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창을 오래 응시한 후 다섯 번을 더 이름과 생년월일,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뭔가 잘못됐을 거라는 희망을 꺽지 않는다. 단호하고 절대 변할리 없는 노트북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욕이 터져 나왔다. ㅆ 제길. 갈 길을 잃어버린 느낌. 코 앞에서 크고 단단한 문이 닫혀버린 거절감. 눈물이 쏟아진다. 동생에게- 뒤이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애처럼 울었다. 외삼촌의 부고 소식과 세 번째마저 합격하지 못한 소식을 전하며 급기야는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모른 채로 눈물은 갈 길을 잃고 방향 없이 흘렀다.


난 지금 행복할까. 불행할까.

행복은 유동적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불행과 더 가깝다고 결론을 내린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행. 인정해야 하는 사실. 나의 수고와 노력이 무위로 끝나 버린 데 대한 약간의 절망감.  

암막 커튼을 치고 평소보다 이르게 일상을 끄고 잠근다.


#4 시간이 나를 부른다.

  일상을 완벽히 끌 수 없다는 현실이 다행이면서도 지금 당장 모든 걸 멈출 수 없다는 데에 화가 났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나를 기다린다. '의무'가 바탕인 일. 기계적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교육을 듣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저녁을 차린다. 딸아이의 학습상담 선생님과 만나고 아이를 씻긴다. 다른 일상은 잠시 접는다.

오랫동안 이어진 운동도 마찬가지다. 피티 선생님과의 약속한 운동 시간. 몸무게에 버금가는 머신을 어깨에 올리고 앉아 엉덩이와 허벅지를 비롯한 전신에 힘을 주고 일어난다. 방금 도착한 불행을 잊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얼굴이 터질 거 같은 느낌이 들자 살 거 같다. 그대로 주저앉을 거 같은 육체의 힘듦과 싸우는 것이 차라리 나은 상태. 매일 자신과 싸우며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 말랑한 마음에도 탄탄한 근육이 붙길 바라면서.


결과에 승복하고,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여.

얼굴에 핏줄이 선다.  


#5 남편의 위로

  커튼이 쳐진 거실이 껌껌하다. 안방으로 향하는 나를 남편이 부른다.

"수진아! 개쓰레기 같은 대학원 가지 말고, 다른 대학원 알아보자. 거긴, 개쓰레기 학교야" "네 가치를 모르는 대학원은 갈 필요가 없어. 아이유도 우리나라 탑 쓰리 기획사에 다 떨어졌지만 지금, 봐. 우리나라 탑 가수잖아. 네 가치를 몰라서 그래" 웃음이 나온다. 하, 개쓰레기라니. 남편의 별명은 선비다. 바르고 정직한 사나이. 행동과 모양과 말투에 예의가 깔린 사람. 저 사람 입에서 '개쓰레기'라는 말이 나오다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분명한 사실로 다가온다. 나에게만큼은. 언니의 가치를 모르는 학교 때문에 오래 괴로워하지 말라는, 동생의 문자가 고맙다.  


공들여 준비한 면접을 시누 언니에게 공유한 날, 언니는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간절함과 준비된 태도로 보여서 나라면 뽑고 싶을 거 같아" 그리고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잘했어. 이젠 교수와 수진이가 맞는지에 달렸고, 주님께 맡기자고"


#6 적당한 불행이 닥칠 때

  하던 일을 멈추고 하교할 아이들과 저녁에라도 외삼촌의 마지막을 뵈러 가지 않았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애들과 어떻게 오냐고 남편만 보내라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할 수 있어 다행이지 싶었다. 결과를 궁금해할 몇몇 지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비참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받지 못한 채 어렵게 위로를 들어야 한 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연락을 차단했다. 내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땅굴을 파니 자존감이 또 바닥을 보인다.


'나'에게 있어 최대의 적은 늘 나였다. 나를 사랑하기로 약속해 놓고 불행의 순간 궁지로 몰아넣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라는 사실. 나만 좋으면 좋은 거지. 말은 늘 이렇게 했지만 등 뒤에 감춘 것은 타인에게 절대 좋은 쪽으로 평가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아직도 나보다는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자 얼굴을 들 수 없어 커튼을 여지없이 쳤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 인연이 아니었나 봐- 다른 더 좋은 곳에 가라는 하늘의 뜻- 더 좋은 일에 쓰임 받을 거야- 최선을 다했고 잘했어- 를 추켜 세우는 가족이 있음에도 비굴하게 초라하게 구덩이 속에서 익숙한 자세로 우울과 슬픔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날이 갠다.


맑게 갠 하늘 속에서 엄마는 또 한 번의 상처를 이겨낼 것이다. 엄마에겐 몇 번의 불행들이 얕고 깊게 지나갔을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지나간 일을 묻어 두고 사는 엄마를 본다. 그간 살아온 것처럼 꺼내지 않고 묻어두며 지나갈 테다. 나처럼 상처를 꺼내 헤집고 긁지 않고, 삶 속에서 흘려보내겠지.


닷새가 흘렀다.


조금 괜찮아진 나를 느낀다.

지나갔음을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만 하면 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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