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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May 12. 2022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금요일 저녁이었고, 퇴근 후 보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던 중이기도 했다. 하루에 서너 번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 알림이 온다. 얼굴도 잘 모르는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하면 댓글을 달기도 하고, 몇 번의 댓글을 주고받은 작가님의 글의 알림이 오면 반가운 마음마저 들어 서슴없이 댓글을 남긴다. 그날 우울의 시작은 '댓글'이었다. 내가 남긴 댓글의 답글에서 나를 작가라 부르지 않고 케런 님이라고 부른 게 시초였다. 정말 시답지 않은 일로 괜찮았던 기분이 끝없이 가라앉자 미친 건가 싶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열등감'의 일종이라고.  


 "이 작가님은 왜 나에겐 작가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을까. 이게 이렇게까지 기분이 안 좋을 일인가. 이것도 열등감의 일종이겠지? 인정해"

인정해, 라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놀란 입으로 말했다.

 "뭐 그깟 일로 그래. 그래도 예전의 너였으면 무너졌을 텐데. 많이 변했다"


 일주일 전, 부산엘 다녀왔다. 휴먼 모래놀이 치료 2급 연수가 있어서였다. 주말 동안 연수를 받고 시험을 보고 하루 더 부산에 머무르면서 내면으로 들어오는 잔잔한 바람을 느긋하게 느꼈다. '분석 심리학'에 대한 강의와 모래상자에서 들여다본 나의 내면은 '콤플렉스' 그 자체였다. 저녁밥을 먹으며 함께 공부한 선생님에게 대뜸 말했다.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였어요"   




인정했고 받아들였고, 괜찮을 줄 알았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온 마음을 휘감은 우울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데려 왔다. '분노'가 걷힌 울음 속엔 엄마의 품이 몹시 그리운 어린 내가 있었다. 내 속을 헤집어 놓은 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어둠 속에 홀로 놓인 어린 내가 가여워서 그 끔찍함을 홀로 견디고 있는 내가 보여서 돌연 울음이 터졌다. 손의 존재를 처음으로 안 날 엄마의 고함소리가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내 작은 귀로 크게 파고들었다. 그날, 그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어린 나를 떠올린 건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앉아서 엄마가 나를 잊지 않고 품어 주러 오리라고 어린 나는 믿고 싶었을 테다. 끝내 엄마가 오지 않은 사실을 알아차린 내가 그제야 보였고, 가여워서 물밀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어도 소리가 기어 나와 어깨를 들썩거리게 했다. 남편이 방문을 열었다. 커다란 구멍을 메꿔 줄 태산 같은 엄마의 품 같은 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 오랜 시간을 혼자 버텼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또, 나를 위해 살았다고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너무도 이해한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나이 사십에 이르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 절로 알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어린 시절 생긴 커다란 구멍은 잠깐잠깐의 행복으로 메꿔지기도 했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메꾼 마음은 너무도 얄팍하고 물렁해서 사소한 부딪힘에도 금방 흠집이 나고 깊게 파였다. 마치 물컹한 젤리처럼. 상처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온 정신으로 집중한 뒤 한참 동안 그 상처에서 헤맸다. 많은 사람을 곁에 두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내가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면 평화가 오래도록 유지되고 '사랑'이 지긋하게 머물 줄 알았다. 상대가 원하는 열까지를 모두 맞추는 것이 갈등을 피하고 미움을 받지 않는 길이라고 여겼다.


 어두운 방에서 오랜 시간 엄마를 기다린 것처럼 나는 나의 노력으로 당도할 타인의 사랑을 맹목적으로 기다렸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살았다. 부서지고 상처받으며 지나 온 길을 내다보니, 그럴듯한 페르소나를 쓴 나도 '나'로서 당당한 나도 분명한 표정 없이 흐리멍덩한 내가 보였다. 감추는 것도 완벽히 내보이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못한 채로 그저 콤플렉스에 똘똘 뭉쳐 상처받지 않으리라, 발버둥 치며 살았구나 싶어 눈물이 차오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오랜 시간 내가 얼마나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인지를 엄마가 공들여 알려 줬다면 조금은 내 표정으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원망했던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엔 '엄마'로서 견딘 모든 세월이 숭고해져 그마저 멈췄다. 그냥, 나는 내가 아프다. 소거되지 않는 상처가 느닷없이 올라와 나를 찌르면 아파서 눈앞이 깜깜해져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해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과거를 습관적으로 복기하고 우울한 구덩이에 빠지는 건 나를 바라보는 이들도 함께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았을 때 무언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아갈 뿐' 교수님의 말씀에 마음이 시큰했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음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건 위선과도 같았다. 타인의 이해 없이도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나' 하나만으로도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어린 나의 내면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 아이가 가진 그날의 감정을 헤아린 순간 터져 나온 눈물 앞에서 나조차도 진심으로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린 나 자신과의 화해가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 댓글로 시작된 열등감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따라가다 보니 보고 싶지 않았던 아이의 얼굴을 볼 용기가 비로소 생겼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다. 자책감도 죄책감도 수치심도 그 아이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자.  

봐봐, 우리만큼 예쁜 사람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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