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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Jul 18. 2022

위로 포비아

나는 이제 '위로' 받을 준비를 해요.

  TV 채널을 돌리다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프로에 멈추게 되는 횟수가 빈번해졌다. 방송 시간을 챙기지 않아도 종종 마주치는 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슬그머니 깊어졌고, 타인과 나를 폭넓게 수용하게 되는 방향으로 흘러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박규리 님의 얼굴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흘러내리는 멜빵바지를 골반쯤에 걸치고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하던, 당시의 대히트였던 엉덩이춤이 함께 떠올랐다. 여전히 고운 얼굴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울의 끝 지점으로 달려가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타인의 어떤 위로도 필요치 않고 삶의 기대조차 없다고 단호히 말하자 박사님의 눈과 입이 단번에 굳어졌다. '위로 포비아' 체크리스트 7개의 항목이 모두 해당된다는 무미건조한 얼굴 속에서 삶의 지긋지긋한 권태가 흘렀다. 그녀의 감정상태를 절반쯤 공감하며 나 역시 7개 항목이 모두 해당되는 '위로 포비아' 였음을 당황한 채 받아들이며 생소한 신조어를 웅얼거렸다.  

1. 혼술을 좋아하고, 2. 약해 보이면 내 존재감이 흔들릴까 봐 두렵고, 3. 타인과의 대화가 버거울 때가 있었고, 4. 타인의 '괜찮아'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매번 느꼈고, 5. 상대방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확신했으며, 6. 힘이 들면 혼자 삭이는 게 제 피부처럼 익숙했고, 7. 내 이야기가 가십거리가 될까 봐 좋은 일조차 말하지 않는 게 일상이었다. "쟤 이번 휴가 때 어디로 간다더라" 이런 말도 듣기 싫었다. 어쩌면 하지 않았을 말까지도 상상해 가며 내 입단속을 했다. "돈도 많은 가봐, 애도 어린데, 그런 델 간데?" 좋은 이야기라도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었다.


  타인의 위로가 두려웠다기보다는 어느 누구도 날 절대 위로할 수 없다고 서둘러 선을 그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고 섣부르게 확신했다. 진심을 담아 힘겹게 전했을 어떤 말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고마워 힘이 된다, 말해 놓고 집에 와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채 끙끙 앓아눕기를 반복했다. 실컷 아파하고 아픔이 무뎌질 때쯤 스스로 일어났다. 100까지 치달았던 감정의 열이 서서히 식어지는 것을 느끼며 네 발로 기어 나와 우울의 흔적을 털털 털어냈다. 내 힘듦을 20년 지기 절친에게조차 꺼내지 않은 이유는 너조차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거야 라는 확신에서 기인했다. 내 힘듦이 네 힘듦이 되는 것도 싫고, 오로지 내 몫이고 내가 견디고 해결해야 하는 아집으로 똘똘 뭉쳤다.  


  왜 그렇게 타인을 불신하고 위로받기가 어려웠을까. 물꼬를 튼 생각은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수없이 덮치고 물러간 사건으로부터 단 한 번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음을 떠올렸다. 사건은 어떤 결말과 사과와 위로 없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일처럼 끝나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해와 관용 없이 그저 '끝'만 존재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의 끝으로만 존재하던 하루살이의 끝. 수십 번을 덮어두고 나니 타인의 대한 불신과 온유하지 않은 딱딱한 믿음만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굳어 버린 행동을 체화해 가며 꺾이고 흔들리고 넘어지며 나는 자랐다.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과 위로받은 경험이 당연히 부재했다. 삶의 지난한 문제와 갈등 속에서 혼자 자생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사람이었다. 방법이랄것까지도 없는 오기만 남은 채 끝까지 버티고 견디는 것이 다였다. 지독한 고통 속의 '나'를 이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였다.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믿음과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 저장하지 못한 채 살아왔으니 나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딱딱하고 건조한 사람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는 듯 보였지만 독기 어린 가시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사람에 더 가깝다. 타인의 고통에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과잉 감정인 상태에서 무턱대고 공감하며 저 사람의 감정을 내 것처럼 전이하기도 한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상태로 스스로를 가두었다. 나는 내향인 중에서도 지독한 내향인으로 손꼽히고, 주로 혼자 있을 때 자주 울고 대중이 없다. 멀쩡하다가도 그냥 운다. 막 피어난 싱싱한 장미꽃을 한 아름 사들고 오면서도 이 장미의 죽음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우울의 경향성이 강한 사람이다. 습관적으로 우울해지고 위로를 거부한 채 혼자 있기를 택한 것은 타인으로부터 파생될지 모를 거절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스스로 견디면 상실과 상심은 경험하지 않을 테니까. 


  너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꽃의 향기를 맡고 별안간 기운이 맑게 피어오르는 것처럼 네 위로가 내게 그렇게 머물면 그뿐이다. 향기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위로도 볼 수 없으니 그저 네 위로로 다정한 품을 느끼고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느끼면 그뿐이다.  


쓸모없는 아집을 버리는 것, 타인에게 향한 기대를 내려놓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가끔 현기증이 올라올 정도로 우울이 덮쳐 방문을 닫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해도 보는 것. 나는 지금 네 관심과 네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 나는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기도 하다고 알리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언제나 나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들을 믿을 것. H의 말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것. 힘든 순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문이 아닌 폰을 들 것. 


아무 말 없이도 모든 말을 들은 듯 네 위로는 가끔 그렇기도 해. 무너질 거 같을 때에도 저 다짐들을 빠짐없이 긁어 모아 네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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