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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Oct 28. 2022

가을을 버티는 나무

나를 적는 일

가을이 깊고 깊다.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이 떨어진다. 나무는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힘들어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문득 안부가 묻고 싶어졌다. 올 해도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내냐고. 누군가 내게 그리 물어 오면 먼 곳을 응시하며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마음을 어쩌질 못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건너오는 다정함이 없다면 곧 멋쩍게 웃으며 답 할 것이다.


"가을 이잖아"  


'자기 분석 보고서' 과제를 받아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써야 하지. 정식 분석, 개인 심리학 이론에 입각한 자신을 분석해 보라는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인생의 '핵심'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사나흘의 고민을 끝내고 작은 노트북과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아침저녁과 대조를 이루는 한낮의 빛이 눈을 찔렀다. 걷고 걷는다. 어디론 가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시선이 간다.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발걸음들은 어떤 마음을 담고 있을까. 발걸음은 곧 마음이 된다. 머리에서 등을 흘러 다리를 거쳐 발로 내려오는 마음들. 어떤 이의 발걸음은 끝없이 슬프기만 했다. 나와 다툰 후 등을 보이고 버스를 타러 가는 엄마의 발걸음도 그러했겠지. 내 부탁을 받고 버스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는 엄마의 발걸음 같은 것들. 허벅지에 힘을 주고 첫걸음을 뗐던 환희에 찬 발걸음. 곧 잊힐 발걸음은 삶이 될 테다.     


나는 나를 쓰기 위해 걸었다.

딱딱한 바닥에 닿는 내 발을 느끼며 걸었다.


걸음을 멈춘 발들이 빼곡하다. 시럽이 잔뜩 든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 전원을 켜고 나를 쓴다. 하얀 바탕에 콕콕 박히는 글자는 귓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을 잊게 했다. 웅성거리던 소음도 멈추고 내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멈추고, 뜨거운 것이 눈을 통해 흘러내린다. 멈춘 손과 발. 퉁퉁부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한낮의 평화를 건너다본다. 크고 넓은 창으로 보이는 익숙한 가을 풍경, 빛 사이로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제풀에 꺾이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잊힐 낙엽들을 밟고 있는 발들. 낙엽은 결국 떨어지고 말지. 초록의 생생함을 잃고 가을의 사무침에 눈물을 쏟고 만다. 아프냐고 묻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웃고 있어도 기억은 나를 슬픔으로 데려가는데, 네게 가을도 그런 것이냐고 묻고 싶다.


두 장의 흰 종이에 까만 글씨로 나를 채웠다.

버티다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이 나도 별 수 없다는 듯, 울어 버리고 만다.

글자로 써내려 간 나. 나를 이뤘던 세계가 요약되어 만난 지 두 달 된 교수에게로 보내졌다. 내 이야기를 잘하지 않은 애로 저명한 내가, 처음 본 교수에게 내 역사를 꺼내 놓는 일이- 곧 점수화되어 돌려 봤을 생각을 하니, 울다가 웃음이 났다.


내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나는 그날 카페에 앉아 울면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마음이 틀렸 다는 걸 알았다. 나는 역시 아프고, 10년 뒤에도 나는 그 일이 아플 거라는 걸 알았다. 그저 그 사건은 내겐 아픈 사건이다. 다만, 아파도 힘들지 만은 않다는 것. 더 이상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이 아니라는 것, 마음을 열고 카페 문을 닫고 늦은 가을의 저녁을 걸었다. 바람 속에서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진다.  


그러니까, 나무야 너도 힘내. 

매 번 가을을 버티게 해서 미안해. 

버티는 계절이 매 번 찾아오는 발걸음도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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