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시절에
라오스를 들락거리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나는 '음주가무'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거였다. '음악과 춤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 노랫말처럼 적당히 오른 취기가 온몸으로 퍼지면 걷잡을 수 없는 만족감으로 이 순간을 붙잡아 놓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뒤늦게 터진 흥 때문에 J는 이따금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원래 이런 애였나 하는 물음. 고등학교 땐 공부 안 하는 모범생이라 그랬고, 성인이 된 이후론 '연애'와 '남자'에 몰두해 있었다.
라오스에서 발견된(?) 나의 음주가무 때문에 J와 나는 몇 번의 다툼을 했다.
"그렇게 같이 여행 다니면 안 싸워?" J가 자신의 지인이 물어 왔던 질문을 내게 했을 때, 우리 사이에 어디 그런 것이 가당키냐 하냐는 듯 우쭐거렸다. 서로의 신경이 무심히 건드려지면 그간의 애정으로 덮어버리는 일이 더 수월했으니까. 80번의 계절이 녹아 있는 사이는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에 남았을 못된 문장들을 우린 몇십 번을 곱씹었다. 우리가 이렇게 실망스러운 이유는, 네 말이 내게 상처로 다가온 것은 내가 그만큼 널 사랑해서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변하지 않은 우정을 더 꼼꼼히 다듬었다. 무너질 일 없는 우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우린 다시 자석처럼 붙었다.
방비엥에서 S 바를 가지 않는 것은 방비엥에 가지 않은 것과도 같다. 하릴없이 아더사이더에 가서 노닥거리거나 방비엥 거리를 쏘다니다가도 우리의 낮은 마치 오늘의 밤을 위한 것처럼 S바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자정을 알리는 goodbye 노래가 금요일에 흘러나온다면 서운하지만은 않다. 흥을 이어갈 정글 파티가 매주 금요일에 열리니까! 금요일 자정에 정글 파티에 가자던 내 제안을 J는 단호한 눈으로 조용하게 거절했다. 자정이 되면 집으로 가야 하는 J와는 달리 나의 밤은 자정부터였다. 이런 다름은 여행이 쌓일수록 삐걱대며 맞춰졌다.
"네가 원한다면 가자"
"아냐 그럼, 가지 말자"
"왜 가자니까, 나 괜찮아"
비엔에 있는 클럽에 가자는 제안을 두고 우린 작게 말다툼을 했다. 그날도 자정이었다. J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마음이 딱 맞아 함께 즐겁고 싶어서였다. 이왕이면 나만 기갈나게 즐거운 게 아니라 너도 미치게 즐거웠으면 싶었다. 끝까지 가자던 J에게 나는 내 생각을 굽히지 않은 채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대사를 날렸다.
"나는 네 밑에 있는 교사가 아니야"
새벽까지 여러 말이 오고 간 가운데 비엔에서 날이 밝았고, 우리의 첫 다툼이었다. 다소 엉망인 밤을 보냈어도 그 뒤의 일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게 우린 다시 '우리'로 돌아가 있었다.
방비엥 S바에서 자정까지 놀고 B펍으로 가자는 내 제안을 J는 가고 싶지 않다는 굳은 얼굴로 대신했다. 나도 어쩐 일인지 이 날은 언짢아진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우리는 각자 속마음에 묶여 터덜터덜 걸어 B펍으로 향했다.
'CLOSE'
문 앞에 걸려있던 큼지막한 영문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린 묶어 두었던 속마음을 네 탓이라는 듯 터뜨렸다. 신경질을 가감 없이 표현하던 내게 J가 이 날의 명대사를 날렸다.
"너 싫어졌어! 가!" (짧은 순간,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놀란 눈으로 신경질을 변명하던 내게 J는 금방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의 재빠른 사과를 받고도 얼얼해진 마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 라오스에 와서 취중에 쏟아 낸 말을 듣고 J도 마음이 얼얼했을까, 싶었다. 때로 J의 이런 큼지막한 목소리는 그날 취중에 내가 한 말로 수렴됐는데, 이런 생각은 내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전과 다름없는 아침을 맞는 것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보여준다. 출발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인천공항으로 다시 돌아오는 관계를 이런 시답지 않은 일로 확인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서로의 명대사를 들먹거리며 쾌활한 채 웃으며 추억으로 다시 새긴다. 서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따져 묻지 않고, 실망을 못 이겨 등을 돌리지 않은 나의 우정이 감사하다. '같다'라고 여겼던 많은 '다름' 안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들은 지난함을 품고 있다. 짧은 공백기는 우리 사이에 그런 과정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더위가 힘든 그녀가 물 한번 마시지 않고 그 땡볕을 걸어 주었던 일을 더 생각하고 나면 사실 이해의 '과정'들은 필요치 않다. 함께 기갈나게 즐거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묶여 있었다. 제주에서 서핑을 마치고 오는 내게 네가 행복했으면 됐어, 라는 그녀의 특별한 마음을 그제야 인정했다. J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라오스를 다녀와서 종종 내게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내오던 마음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지를.
함께 하는 여행 안에서도 나의 시간을 보장하고, 너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반복되는 시간 안에 함께 있다는 게 비현실로 느껴지자 불편한 감정도 사치고, 말이 없는 공간 안에 서로의 사색을 돕는 자로, 내가 기억하는 너 말고 새롭게 발견한 너를 사진에 담아주고 나면 우리의 여행은 절반쯤 끝나 있었다. 여행은 점점 그렇게 변해 갔다.
여행지에서 친구와 다투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끈끈한가를 굳이 꼭꼭 마음으로 느끼는 일이며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당연했는지를 비로소 공기가 옆에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니 마음껏 다투고 마음껏 사랑하기를.
그래서 다음에 S바 갈 거야? 안 갈 거야?
당황한 채 잠깐만 공진단 좀 먹고 생각해 볼게, 하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덧!
브런치 북 '라오스 시절에'와 연장선에 있는 글입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종이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종종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출간 제의는 택도 없는 일이라 독립출판으로!)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잊힌 기억들을 꺼내는 중입니다. 글은 만져지지 않으니 만져지는 글로 간직하고 싶어서요. 저의 진짜 진짜 소중한 날들이거든요.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J야! 투자 좀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