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려 읽는 두 번째 글
쓰고 싶은 글: 서부극 - 그런데 사회주의 코뮌 이야기를 곁들인. 남/여 주인공 각 1명. 남자는 파리 코뮌의 생존자이며 미국으로 도피 후 수도사로 신분세탁. 여자는 남부 노예 출신이며 탐정기관의 정보원. 서부에서 일어나는 혁명 이야기. 써놓고 보니 재미없는 요소들 총집합 올스타전이네…
읽어야 하는 글: 프랑스 혁명사. 전쟁에 대한 여성의 시각이 묻어나는 책. 서부 개척사.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미국 흑인 노예 이야기. 5·18 등
웨스턴을 쓰겠다는데 거기에 사회주의 코뮌을 섞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시도다. 사회주의 그런 것은 역사책에서 개론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 정도만 봐왔으니까. 그런데 굳이 이걸 공부해 서부 황야에 끼얹어보겠다니. 엄살 섞어 과장하자면 ‘빨갱이’가 되는 기분. 식자들이 조소할 표현이라는 것은 알지만, 뭔가 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애써 프랑스의 혁명 이야기를 파는 것은… 이런 시도가 없으면 웨스턴은 그냥 황야의 총싸움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런 건 너무 진부하니까. 게다가 아직 문명이 닿지 않은 서구의 공간이라는 것이,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 운동에서 염원했던 이상적 공동체의 실험 장소로 적당하겠다 싶었다. 개척 중인 미 서부의 세계는 총만 들었다뿐이지 원시적이고 고립된 중세적 세상이었고, 대부분 무산자 신분이었던 개척자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했다. 이것이 계급 해방과 인권 신장을 위해 민중이 자발적으로 연대했던 혁명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또한, 그 ‘고립된 세상’이라는 점이 혁명의 불씨가 너무 일찍 꺼지지 않을 설득력을 더해준다고 보았다. 유럽에서의 혁명 움직임이 진압당한 이유는 정부와 군대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지. 서부에서의 실험이라면, 이를 방해할 정부는 한참 멀리 동부에 있으니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즉, ‘말이 된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웨스턴을 비틀려는 시도를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하던가. 취미로, 글이 팔릴 걱정 없이 내키는 대로 쓰는 사람이라 별짓을 다 해 본다. 잡설은 여기까지. 본 주제인 프랑스 혁명사로 돌아가자.
프랑스 혁명이야 워낙 세계사에서 큰 이벤트이기 때문에 매우 어렸을 때부터 알았지만, 좀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 학급문고에 꽂힌 어떤 책 때문이었다. 프랑스 작가 막스 갈로가 쓴 [나폴레옹]이라는 책이었다. 도대체 중학교 교실에 이 책을 놔둔 인간이 누구였는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웅대한 기상을 남학생들이 본받기를 바랐는지도. 당시 시리즈 전 5권 중의 1권만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유년기를 거쳐 프랑스 혁명을 발판 삼아 막 날개를 펼치는 이야기라 참 재밌었다.
책에서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의 관점에서 묘사된다. 읽은 지 오래되어 제대로 기억은 안 난다만, 꽤나 혼란스럽고 폭력과 살인이 횡행해 주인공 나폴레옹이 쓴웃음으로 정세를 바라본다. 그러나 혁명정부에서 장교 부족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사적 재능을 펼쳐 문제를 해결한다. 혁명정부는 제대로 지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나폴레옹에게 각종 난제를 맡기고, 나폴레옹은 다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멋진 승리를 연이어 거둔다. 혁명은 딱 영웅담에서 주인공의 성장에 필요한 발판 또는 난관 정도의 도구적 역할에 그친다.
그러다 조금 더 자극을 받은 것이 영화 [레미제라블]. 뮤지컬 영화인 줄 모르고 봤다가 상당히 당황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루이 16세의 멱을 따버렸던 1789년의 대혁명이 아니라, 한참 뒤인 1832년에 일어난 소규모 봉기가 배경이었고. 그러나 유려한 영상미, 유명 배우들이 함께 어우러진 “One Day More”와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들으며 형언할 수 없는 혁명 뽕이 차올랐다.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본 ‘시민 동지’ 분들이라면 이해가 더 잘 되실 듯. 애당초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많은 시위에서 불리기도 했고.
아마 이런 뽕에 두 책을 사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은 동생 회사에서 포인트를 써야 한다기에 내가 대신 써줬고,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은 ‘프랑스 혁명사를 만화로 볼 수 있다고?’ 혹해서 샀다. 문제는 두 책 모두 매우 두껍고, 역사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특히 후자 [파리 코뮌]이 더욱 그러했다). 전자는 정말 하나도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았으며, 후자는 만화라고 만만히 보고 달려들었다 한 방 먹고는 따라서 책장으로.
그렇게 잊고 지내다 작년 11월 정도부터 ‘웨스턴 코뮌’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역사의 장난인지, 책을 읽고 있던 12월 3일 한밤중에 현 정부의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정국은 프랑스 혁명처럼 혼란스럽게 흘렀으며, 1월 말인 지금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정국 혼란이 빨리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며, 이제 두 책에 대한 감상과, 나중에 내 글에 반영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상평: 서울대 사학과 故 노명식 교수가 이 책의 초판을 낸 것은 1980년이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다시피 “그 시기의 우리나라는 박 대통령 시해, 서울의 봄,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등장 등 정치적 소용돌이에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최루탄 냄새를 맡아가며 쓴 책이라 그런지, 대략 80여 년의 프랑스 근대 혁명사를 다루는 이 책에서는 혁명에 대한 저자의 강한 지지와 의지가 드러난다.
책에서 프랑스 혁명은 귀족, 성직자 신분에 대항한 부르주아 제3신분이 국민의회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기존 체제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무너뜨리고 쳐내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파괴적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처음에는 구체제를 지키려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목이 날아가고, 뒤에는 입헌주의자와 왕의 목이, 다음에는 온건주의자, 그다음에는 급진주의자 중에서도 우파, 그 우파의 목을 자른 공포정치가……. 나 같이 큰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 사람에게는 환장의 릴레이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을 보고 있으면 혁명이 계속 관철되어 쳐낼 것은 모두 쳐내야 함을 역설하는 듯하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며 질서 운운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그들은 이전까지의 혁명 단계에서 챙길 것을 다 챙기고 이제 자신들이 중심이 된 권력 체제를 만들려 한다고. 반혁명 세력이 된다고.
그것이 당연한 순리라 볼 수 있겠지만, 역사를 통해 뜻을 전하는 저자의 말이 내게는 꽤 무겁게 다가왔다. 어느 세태에라도 반영되지 않을까. 정권을 비판하며 ‘혁명’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항상 많다. 당장은 정권 타도를 위해 소위 ‘빅 텐트’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 그런데 정말 정권이 엎어진다면? 그때부터는 또 다른 문제다. 사람들이 말하는 ‘혁명’은 다 같은 뜻이 아니기에. 그냥 그 정권을 제거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끝낼 사람도 있고, 더 큰 변화를 원할 세력도 있으며, 아예 판 자체를 깨버리고픈 집단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내가 바라는 ‘혁명’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내가 그만하고 싶어지면, 그때부터 나는 ‘반혁명, 보수’ - 소위 ‘나쁜 놈’이 되는 걸까.
이외에도 저자는 기나긴 프랑스 혁명사의 끝에 등장하는 1871년 파리 코뮌 운동을 논하며, “장차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모범”이라고 마르크스의 평보다는, 1789년부터 이어진 “프랑스의 공화적·혁명적 전통에 종지부를 찍게 한 사건”이라는 평에 더 공감한다. 파리 코뮌의 처절한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의한 혁명의 기도를 포기하게 하여 “평화적 타결과 화해의 길”을 열게 했다고. 극좌파가 제거되어 조직화된 사회주의의 성장을 크게 지연시켰다고. ‘파리 코뮌의 정신이 미 서부로 이어진다’는 설정으로 ‘혁명 정신의 계승’을 이야기하고 싶은 내 입장에서는 좀 떨떠름한 이야기였다. 뭐, 사건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저 창작물을 만들고 싶은 나는 나만의 해석을 하면 되겠지.
내 글에 반영할 점:
☞ 1789년부터 1871년까지 이어지는 프랑스 혁명 운동의 역사와 정신
☞ 영원한 혁명파는 없다. 성공한 혁명파는 보수파가 된다
☞ 당신이 생각하는 혁명은 어디까지입니까?
감상평: 이 작품은 프랑스의 만화가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가 역사추리소설 《민중의 함성》을 각색해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한국 만화계도 깊이 알지 못했으니, 프랑스 만화가는 더욱 낯설었다. 그런데 이후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찾아본 여러 기록에서 그를 ‘프랑스 국민 만화가’의 반열에 올리더군. 만화계에서 매우 권위 있는 행사인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차례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으며, 그 외에도 벨기에, 독일, 미국 등지에서 수상하며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이 만화 역시 앙굴렘에서 데생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원작 소설을 쓴 장 보트랭(Jean Vautrin)은 그의 글에 아주 날것의 파리 코뮌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던 듯하다. 이런 원작 작가의 뜻을 충실히 살려, 타르디는 흑백 두 색만으로 1871년의 파리를 치밀하고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정부군과 대치하는 시민들의 용감한 혁명 정신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느새 댄스홀로 끌고 와서 협잡꾼들과 창부들의 거칠고 비참한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뮌의 이상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국민방위군’이 등장하고, 곧이어 이들을 차례차례 처형하는 정부군도 모습을 드러낸다. 죽은 코뮌 운동가의 시신을 모욕하는 부유층의 가증스런 모습까지 담아낸다. 그 당시 실제로 쓰였던 포고문, 노래,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도 풍부하게 담겨 있어, 파리 코뮌의 역사를 일부 활용하려는 내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다.
문제는… 만화라는 것에 혹해 무슨 국내 학습만화마냥 생각하고 이 책을 샀다간 후회할 정도로 어렵다. 이 책은 프랑스의 근대 혁명사, 더 나아가 파리 코뮌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덤볐다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최근에 바로 위에서 말한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읽고 난 직후였다. 그래서 대충 코뮌 운동의 배경과 흐름을 알고 있었고, 그제야 만화에서 왜 시민들과 정부군이 싸우고 피가 터지고 삼색기(三色旗) 대신 적기(赤旗)가 나부끼는지 이해했다. 작품 안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끔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너무 긴 텍스트가 한꺼번에 쏟아져 여러 번 되짚어 읽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라이트한 독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작품. 파리 코뮌 관련 입문서가 아닌 심화편으로 읽겠다면 추천하겠다.
내 글에 반영할 점:
☞ 파리 코뮌 운동 중 일어났던 실제 에피소드 여럿
☞ 처음 희망 넘치던 순간, 그리고 잔혹하게 진압당하는 순간
☞ 민중의 삶을 세밀하고 진실하게 재창조하는 만화가의 표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