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글 쓰려 읽는 세 번째 글

by 즈징

글 쓰려 읽는 글 -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 목적으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 모아보기


쓰고 싶은 글: 서부극 - 그런데 사회주의 코뮌 이야기를 곁들인. 남/여 주인공 각 1명. 남자는 파리 코뮌의 생존자이며 미국으로 도피 후 수도사로 신분세탁. 여자는 남부 노예 출신이며 탐정기관의 정보원. 서부에서 일어나는 혁명 이야기. 써놓고 보니 재미없는 요소들 총집합 올스타전이네…


읽어야 하는 글: 프랑스 혁명사. 전쟁에 대한 여성의 시각이 묻어나는 책. 서부 개척사.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미국 흑인 노예 이야기. 5·18 등




<글 쓰려 읽는 글 3.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 인류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상대 부족의 생산물 빼앗기, 우리 부족의 인구 과밀로 인한 영토 확보, 꼭 합리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부족 간 원한과 복수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든 전쟁은 인류사에 등장한 이후 단 한 번도 모습을 감춘 적이 없다. 일부 지역에서 평화조약이 맺어지거나, 패권을 쥔 세력이 강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서를 유지하며 잠시 조용해질 때가 있었을 뿐.


그 결과, 전쟁은 조직적 살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발전과 방어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살인과 죽음이 칭송받기까지 한다.


손견이 동탁을 칠 때, 동탁의 부장 화웅은 손견의 군사를 격파하며 여러 장수를 죽였다. 당시 공손찬을 따라 제후 진영에 와 있던 관우는 화웅의 목을 당장 잘라 오겠다며 출전을 자원한다. … 조조가 관우를 불러 따뜻한 술을 한잔 따라주자 관우는 말을 타고 달려나가면서 말한다. “술은 잠깐 놔두시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관우가 화웅의 목을 잘라 왔을 때, 술은 아직도 따뜻했다.
- 나관중, 《삼국지연의》 中


실제 관우는 화웅과 겨룬 적이 없지만... 나관중 덕분에 고나우는 공짜 공적도 얻고 공짜 술도 먹었다.


“젊은 용사가 전장에서 쓰러질진대, 예리한 청동 무기에 찢기어 쓰러짐이 그에게는 마땅한 운명이니라. 비록 죽었을지라도, 그에게 드러나는 모든 것은 곧 영예로운 것이니.”
“아니로다, 차라리 치열히 싸우다 죽을지언정, 초라하게 쓰러지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장차 올 이들의 귀에 전해질 위대한 일을 이루며 최후를 맞으리라.”
- 호메로스, 《일리아스》 中


동생의 불륜 때문에 젊은 용사 헥토르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와 치열히 싸우다 최후를 맞이한다.

칭송은 여러 시대를 거쳐 이어졌다. 중세 십자군은 “신께서 원하신다!” 외치며 이교도 살해를 옹호했다. 전국시대 일본의 무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무용이 영웅담이 되어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갑옷을 개성 있게 치장했다. 19세기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서 외교 문제가 발생하자, 양측 국민 모두 실추된 국가 위신을 회복해야 한다며 열렬히 전쟁을 외쳤다.


이런 분위기가 그나마 가라앉은 것은 인류가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고, 그러고도 모자라 몇 번을 더 싸우고 죽은 후였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총력전’ 개념의 등장은 구시대적 전쟁에서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던 전쟁피해자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늘려놓았다. 그로 인해 전쟁의 비참함을 더 많은 사람이 직접 겪었다. 한편 미디어의 발전은 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최전선의 모습을 ― 물론 어느 정도 검열은 있지만 ― 보여주었고, 전장이 기사도적이고 명예로운 결투의 무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했다.


이제 일부 매파 정치인들이나 전쟁광을 제외하고는 전쟁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오늘날 책이나 영화에서 전쟁은 잔인하고 비정하게 그려진다. 비디오게임 쪽은 다소 호쾌하게 묘사하기도 하나, 전쟁을 영웅시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웬만하면 나치 독일처럼 ‘죽여 마땅할 정도로 나쁜’ 적들을 상대하는 데 그친다. 완벽하진 않지만, 인류는 비싼 값을 치르고 나서 꽤 똑똑해진 것이다.


PTSD를 넘어 '전쟁중독'까지 다룬 영화 《허트 로커》


그래도 앞서 짚었듯 완벽하지는 않다. 아직 존재하는 결점 중 하나는 반전(反戰)과 염전(厭戰)의 사상을 주로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낸다는 것. 물론 변명은 있다. 역사상 전쟁에 더 많이 동원되어 싸우고 죽어간 피해 성별이 남성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은 초기 비전투 보조 인력으로 시작해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정규 전투 병력으로 인정을 받는 등 전쟁에서 계속 역할을 맡아왔고, 그네들도 나름대로 전쟁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웨스턴 코뮌’이라는 희한한 소재를 글감으로 삼았으니, 대의를 내건 혁명과 그에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집단 폭력이 글에 등장할 것이다. 대의와 폭력이라니, 전쟁이랑 양상이 똑같네. 그리고 나는 글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여성을 택했다. 이제 이 여성 인물은 ‘코뮌’ 성립과 갈등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데… 순전히 내 창작만으로는 묘사를 잘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참고할 책을 찾았고, 그렇게 고르게 된 책이 바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감상평: 가볍게 책의 배경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소련을 공격해 그 군대를 괴멸하고 소련 영토 깊숙이 침입해왔다. 이에 소련은 병력 부족으로 여성들까지 전장에 내몰게 되었다. 전쟁 당시 소련이 동원한 여성 병력이 전체적으로 약 80만~100만이나 된다고 하니,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병력 동원 사례이다. 당시 소련 여성들은 단순히 취사, 의료 등 보조적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저격수, 전투기 조종사, 전차 승무원, 빨치산 등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대조국전쟁”에 참전한 생생한 기억을 가진 여성들의 목소리가 외면받는 것에 주목하고, 1978년부터 자료 수집과 집필을 시작해 1985년에 책을 출간했다.

무려 309명을 사살했다고 알려진 "죽음의 여인" 루드밀라 파블리첸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여자 병사들은 결코 보조적 존재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이 책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다. 전쟁이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니, 그럼 남자의 얼굴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뭐… 보통 전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남자 정치인들이었던 건 맞다. 근데 ‘남자의 얼굴’을 인정하기엔 좀 억울했다. 남자인 나는 일생 동안 전쟁을 바란 적이 없거든. 전쟁을 선망하고 기대하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병역의 의무’라는 참교육 특효약이 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넘어갔던 기억.


그러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읽어본 이 책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단순히 ‘우에엥 여자들 전쟁에서 죽었어요 우리 억울하고 불쌍해요~’의 내용이었다면, 나는 조용히 비웃고 책을 일찍 도서관에 반납했을 것이다. 전쟁에서의 죽음과 억압의 서사는 남자들 쪽에서 이미 수없이 다뤄온 것이라 익숙하니까.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들의 문제는 그와 양상이 달랐다. 그녀들은 남자들처럼 목숨과 자유를 빼앗기는 데 더해, 자신의 성(性)과 기억을 부정해야 했다. 전쟁 중에도, 그리고 전쟁이 다 끝난 후에도.


책에서 작가는 남성의 영역인 전쟁에 여성들이 참여하게 되어 겪은 어려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전한다. 작가는 자신이 중립을 지켜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劇化)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그렇게 작가가 인터뷰 내용을 담담하게 옮긴 르포르타주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은 나의 마음은 마치 극화된 문학을 읽은 것처럼 격하게 뛰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억지를 부리지 않았기에 진심이 전해진 것.


책에 담긴 수많은 사연. 여성이기 때문에 생긴 사연들. 그 시작은 언어에서부터. 러시아어에서 명사는 남성/여성/중성으로 분류되는데, 전쟁은 남성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 세계의 대상은 모두 남성 명사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들이 대거 그 세계에 들어오자 문제가 생긴 것. 비로소 여성 군인들을 가리키는 군대 용어들이 생겨났다.


사연이 너무 많아 예시로 들 것을 고르기 어렵다.

귀고리를 하거나 눈썹에 물을 들인 병사들에게 남성 장교들은 똑같이 혼을 낸다. ‘나는 병사가 필요하다. 숙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숙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독일군은 그들의 상대가 여성임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 군에서는 붉은 군대의 여자 병사들은 여자가 아니라 간성인(間性人, 성적으로 남성의 특징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라고 선전했소…….’

진군 중에 생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피가 다리 위에서 말라붙고, 이것이 굳어 살을 벤다. 강에 다다라 적의 공습이 퍼붓는 와중에도 여자 병사들은 정신없이 강물로 뛰어든다. 생리혈을 씻어내기 위해. ‘창피한 게 죽는 것보다 더 싫었거든. 결국 우리 중 몇 명이 물속에서 그대로 목숨을 잃었어…….’

빨치산의 은신처가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추격대가 들이닥친다. 빨치산은 늪지대에 들어가 몇 날 며칠, 몇 주를 머리만 내놓고 목까지 늪에 잠겨 숨는다.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어대자 추격대에 들킬 위험에 처한다. 결국 아이 엄마는 결단을 내린다.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 이상 울지 않았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통의 시간이 지나, 독일 베를린이 함락되고 전쟁은 소련의 승리로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아이들을 여럿 낳고, 대학에 들어가고, 미용실에 죽치고 앉아 예쁘게 꾸민 자기 모습만 바라보고, 좋은 향수도 사고 머플러도 사고 브로치도 사고 싶었던 그녀들. 하지만 전후에도 사연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보이는 거라곤 시커먼 벽돌뿐인 세상에서, 청혼을 받은 비행기 조종사는 남자에게 절규한다. ‘나를 좀 봐요……. 지금 내 꼴을 좀 보라니까요! 먼저 나를 여자로 만들어줘요. 꽃도 선물하고, 데이트도 신청하고, 달콤한 말도 하란 말이에요.’ 조종사는 이미 여자로 살아본 지 너무 오래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앞의 경우는 나은 편이라고 할까.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여자 병사들이 남편감을 찾아 전쟁터에 간 거고, 그곳에서 연애질만 실컷 하다가 왔다고 믿었다. 독일군과 싸우다 집으로 돌아온 딸을 어머니는 짐을 싸놓고 내쫓는다. 4년 동안 남자들과 함께 잔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네가 집에 있으면 동생들 시집길이 다 막힌다고. 전장에서 사랑을 속삭였던 남자 병사들도 전후에는 말을 바꾸었다. ‘4년 동안 닳아빠진 군화에 남자 솜옷을 입고 다닌 그 아가씨가 지겨웠던 거요. 우리는 전쟁을 잊으려고 애썼소. 그리고 그때 사랑했던 여인들도 함께 잊은 거요…….’

그리고 그녀들이 겪은 진실을 말할 기회도 잃었다. 소련 공산당과 정부에게 전쟁 승리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영웅적이고 이상적인 사건으로 남아야 했다. 여성들의 진실은 천박하고 세속적인 것이고, 이는 허락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와 남편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여성들을 다그쳤고, 출판 검열관은 작가가 ‘신성한’ 여자 병사들을 ‘하찮게 만들고, 암캐로 만들었다’라며 비난한다.


반전(反戰) 이야기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들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이것은 단순한 반전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성별이 전쟁으로 인해 그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야기는 처음 읽어보았다. 항상 남자들의 시각과 감정으로 전쟁을 보다가, 여성이 전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 접해… 너무 어색했다. 전쟁을 냄새, 색깔, 소소한 일상, 간부 몰래 원피스를 입어본 기쁨으로 기억하는 그녀들의 방식이 낯설었다. 심지어 그 끔찍한 중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다니! “그 아이가 죽어서 관 속에 누웠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거야……. 꼭 어여쁜 신부 같더라니까…….”

나는 역사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전쟁사는 꽤 많이 팠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장군 이름, 그들의 전략과 전술, 싸운 장소, 병력의 규모와 무기, 승패, 외교와 음모, 최종 결과에 대해서는 듣는이를 지루하게 만들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이쪽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 까막눈이었음을, 그리고 이 ‘부분’을 꼭 알아야 했음을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됐다. 이런 이야기도 모르고 큰 싸움에 휘말리는 여성 인물을 다루었다면 정말… 얼마나 모자란 캐릭터가 만들어졌을지 아찔하다.


이 글을 쓰기 전, 다른 매체에 이미 짧은 감상평을 남긴 바 있다. 거기서 이렇게 썼다.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었는데 너무 늦게 읽었다. 무언가 크고 대단한 것을 다루고자 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는 책.’ 책에서 읽으며 느낀 점을 내 나중 글에 반영할 것이다. 그 어떤 대의도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일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다고. 그리고 글에서 한 축을 맡을 ‘그녀’가 단순히 혁명의 관찰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혁명을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물이 되는 것으로. 정말 좋은 책이었다. 강력 추천.


내 글에 반영할 점:

☞ 전쟁은 누구의 얼굴도 하지 않았다. 특히, 여자의 얼굴을 닮은 적은 없었다

☞ 큰 사건에 자신의 시각을 넣는 만큼 타인의 시각도 반영할 것

☞ 그 어떤 대의도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다




다음 읽을 글: 피와 천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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