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려 읽는 네 번째 글
쓰고 싶은 글: 서부극 - 그런데 사회주의 코뮌 이야기를 곁들인. 남/여 주인공 각 1명. 남자는 파리 코뮌의 생존자이며 미국으로 도피 후 수도사로 신분세탁. 여자는 남부 노예 출신이며 탐정기관의 정보원. 서부에서 일어나는 혁명 이야기. 써놓고 보니 재미없는 요소들 총집합 올스타전이네…
읽어야 하는 글: 프랑스 혁명사. 전쟁에 대한 여성의 시각이 묻어나는 책. 서부 개척사.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미국 흑인 노예 이야기. 5·18 등
어렸을 때부터 뭔가 ‘마이너’한 것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근거 없이도 내가 남들보다 잘났다고 자존감을 채우는 부분이 있지 않나. 나 같은 경우에는 ‘취향’의 부분에서 드러났던 것 같다. ‘너네들과 다른 나는, 너네와 같은 것을 향유하지 않는다’ 정도의 심리였겠지. 지금의 언어로 치면 약간 “홍대병”에 가깝다고 본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마이너함’이 너무 심해지면 거부감을 느끼지만. 세월이 야속하다 ㅠㅠ
이런 나의 ‘마이너함’은 취미로 역사를 공부하고 즐길 때도 영향을 끼쳤다. 너무 ‘메이저’한 나라, ‘메이저’한 시대는 피했다. ‘홍대병’ 기질도 있었으나, 사실은 남들이 잘 모르는 지식을 갖추어야 잘난척하기 쉬움을 노렸던 것. 이렇게 역사 오타쿠가 되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된 취향. 나는 ‘애매한’ 시대를 좋아했다. 아예 한 시대의 특성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시점보다,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넘어가며 앞엣것과 뒤엣것이 ― 기술이든, 사상이든, 문화든, 과학이든 ― 섞여 있는 시점. 지금은 좀 공격적인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튀기’적인 시대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 내 취향에 걸리는 시공(時空)이 바로 서부개척시대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북아메리카 동부에 자리 잡고 있던 미국이, 1803년 프랑스로부터 대륙 중부의 거대한 “루이지애나” 땅을 매입하면서부터 시작하는 서진(西進)의 역사. 단순히 땅을 차지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도 너무 흥미진진했다. 19세기 서구권은 급속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같은 문명권에 속한 거대한 땅이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무법천지로 남아있는 모순. 리볼버 같은 신무기와 구시대적 생존 방식이 공존하고, 다양한 배경의 개척민들과 원주민들이 서로 협력과 충돌을 반복하며, 자기들 나름의 질서를 형성하는 시공. 뭐… 그런 게 재밌었다고. 설명하다 보니 좀 오타쿠의 고해성사 같은 느낌.
이런 취향의 계기는 다소 뻔하다. 한때 쏟아져나온 서부극 영화들을 보면서부터였다. 한국에서도 꽤 익숙한, 세르조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 영화들을 재밌게 봤다. 특히 ‘수정주의 서부극’은 할리우드 고전기(1930~50년대)의 전형적 백인 기사도의 서사를 벗어나, 선악이 명확하지 않은 인간군상이 서부 황야에서 만들어내는 날것의 모습이 입맛에 맞았다. 게다가 요즘은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 같은 서부시대 배경 게임들도 뛰어나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가상으로나마 직접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 말을 몰고 육혈포를 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인생 게임’이라 할 만했다.
취향이 이렇다 보니,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뒤로 ‘언젠가 서부극 한번 다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계속 갖고 살았다. 다만 웨스턴은 웨스턴이되, 너무 뻔하지 않은 웨스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이제 골치가 아픈 거지. 그런 이유로 머리를 한참 굴리다가 부족하나마 내놓은 게, 연재 글마다 언급하는 ‘서부극 - 그런데 사회주의 코뮌 이야기를 곁들인’이다. 이걸 쓰기 위해 여러 책을 읽으며, 동시에 이렇게 연재 글도 쓰고 있으니, 이번에는 아마 공염불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인생은 기묘하여, 책장을 찾아보니 예전에 사둔 책 중에 미 서부 개척사와 관련한 책이 하나 있었다. 《피와 천둥의 시대》. 부제는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내가 언젠가 서부극을 쓸 거라고 과거에 미리 느꼈던 것일까. 이야기의 배경이 될 공간이 어떻게 준비되는지 많은 것을 알려주리라 희망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감상평: 이 책을 펼치고 몇 장을 읽자마자, 책 내용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대략 1880년대, 마을이 점점 자리 잡고 보안관과 카우보이가 활약하는 서부를 바랐다. 하지만 《피와 천둥의 시대》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책의 잘못도 아니었고. 부제에서부터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카 인디언 멸망사”. 그러니까 이 책은 ‘석양의 무법자’가 육혈포 활극을 찍는 서부 이야기가 아니라, 그 무법자가 설치게 될 서부 땅이 어떤 좌충우돌의 과정을 통해 마련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가 안 맞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서부의 형성과정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끝까지 읽었다.
다행히도 책의 전개 방식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이 책은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고, 서부를 탐험하며, 원주민들과 충돌하고, 남북전쟁과 나바호족 복속의 역사를 거쳐 가는 과정을 한 인물의 삶과 병렬적으로 그려낸다. 그 인물은 바로 크리스토퍼 “키트” 카슨으로,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인 덫 사냥꾼, 탐험가, 길잡이, 그리고 군인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생계를 위해 막일꾼이 된 키트 카슨은 타고난 수완과 호기심, 강인함으로 서부에서 알아주는 덫 사냥꾼(모피를 얻기 위해 덫을 놓는 사냥꾼)으로 성장한다. 로키산맥과 대평원 지역을 탐험하면서 아파치, 코만치 등 다양한 원주민 부족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언어와 스페인어를 익혀 멕시코인이나 부족민들 사이에서 교섭도 곧잘 했다.
모피 시장이 위축되어 고민하고 있던 키트는,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서부를 점령하려 나서자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처음에는 서부로 향하는 경로를 측량하고 기록하는 원정대에 고용되어 길을 안내하고, 원정 중 일어나는 응급상황에 기지를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시대의 흐름이 요동치면서 그의 역할은 점점 다양해진다. 군인이 되어 적과 싸우고. 대륙을 동서로 가로질러 워싱턴 D.C.까지 소식을 전달하는 특사가 되기도 한다. 생애 후반부에는 정부 정책에 따라 나바호족을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 시키는 잔혹한 모습도 보였다가, 보호구역 운영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부에 나바호족이 원래 영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요청하는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 햄튼 사이즈는 이런 키트 카슨의 일생을 나름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래도 긍정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더 보여주지 않나 싶다.
이런 키트의 위인전 한편으로, 책의 반대편에는 나바호족이 서 있다. “디네(Diné, ‘사람들’이라는 뜻)”라고 스스로를 불렀던 사람들. 오늘날의 뉴멕시코 북서부에 살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웃었을 때’에 이름을 지어주고, 말타기를 즐겨 말에서 떨어지는 일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으며, 숫자 4를 신성시해 그들이 사는 땅을 성스러운 네 산 가운데로 삼았던 이들. 남쪽에서 스페인인이 올라오든,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인이 오든 나바호족은 절대 굴복하지 않고 계속 투쟁하며 생존해왔다.
그러나 멕시코를 몰아낸 미국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디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스페인과 그 후임인 멕시코는 나바호족을 공략할 힘이 없었으나, 미국은 지속적으로 나바호족을 몰아붙인다. 처음에 미군은 나바호족과 평화조약을 맺으려 했지만, 나바호족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흩어진 부족들의 총칭이었다. 그러니 대표로 보이는 사람을 불러 약속을 시켜봐야 다른 무리는 모르는 일일 수밖에. 게다가 구역을 정해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이며, 미국의 아래에 새로이 들어온 뉴멕시코 주민들을 약탈하지 말라는 것도 부족민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디네”에게 자유로운 땅이었고, 뉴멕시코 주민들과의 갈등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기에 하루아침에 끊을 수 없었다.
결국 미군은 나바호족을 무력으로 복속시키려 든다. 작가는 강대했던 한 부족이 느릿느릿하고 참담하게 몰락하는 과정을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다.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사소한 분쟁에서 목숨을 잃고, “빌라가나(Bilagáana, ‘백인, 미국인’을 뜻하는 나바호 말)”는 “디네”의 철천지원수가 된다. 이후 기습과 복수와 평화가 번갈아 찾아오는 지리한 핏빛의 시간. 그 끝에 “일반 명령 15번”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으로 내려진 미군의 초토화 작전. 나바호족은 긴 시간을 포위 속에 견뎌내나, 결국 식량 부족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항복한다. 미군은 나바호족을 “보호구역”에 들어가도록 하지만, “디네”는 그곳에서도 계속 고통받는다. 농업에 부적합한 토양, 열악한 식수와 보급 부족,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 같이 옮겨진 다른 원주민 부족들과의 충돌로 인해 처참한 수준으로 전락한다.
1868년 5월 말, 서부의 영웅 키트 카슨이 세상을 떠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보호구역의 운영을 살펴보려 동부에서 보낸 위원회가 도착했고, 나바호족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확인한다. 위원회는 어느 정도 구역 제한을 두되 그들이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허락한다. “디네”는 그제야 고향으로 돌아가 신성한 산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불완전하나마, 그리고 잠시나마 구원을 받는 것으로 책은 끝이 난다.
미국이 점차 영토를 넓혀 나가며 여러 원주민 부족들을 몰아내고 동화시키려 한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두 문명 ― “디네” 일부는 “빌라가나”들이 항문이 없다고 믿었고, 미국인들은 나바호족에게 ‘으뜸 추장’이 있을 거라 믿었다. 이런 몰이해의 두 문명이 마주쳤을 때, 특히 한 쪽이 다른 쪽을 복속시키려 할 때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이를 담담하게 설명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슬픔이 더 강해지는 느낌.
게다가 ‘서부’에 대한 내 생각도 좀 바뀌었다. 비록 책에서는 내가 원했던 1880년대가 아니라 키트 카슨의 생애에 따라 1809~1868년의 세월을 다루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서부라는 공간은 1840년대나 1860년대나 1880년대나 성질이 다들 비슷한 것처럼 느껴졌다. 거칠 것 없이 자유로웠던 야생의 황야였으나 점점 문명에 정복되어가는 공간. 뉴멕시코 주민들이, 나바호족이, 그리고 카우보이들까지 차례차례 복속되는 공간. ‘서부개척시대’란 결국, 먼저는 미군이, 이후에는 철도와 전신주가 들이닥치며 점점 조여오는 시간 속에서,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이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던 시대였을지 모른다.
내 글에 반영할 점:
☞ 내가 쓸 글의 배경이 될 ‘서부’라는 공간은 어떻게 마련되었는가
☞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담담한 필체의 매력
☞ 문명에의 복속이 예정되어 있는 ‘서부’ 공간의 비극적 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