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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끄고릴라 Feb 18. 2023

그때는 그럴만했어.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TO.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있는 당신에게.



얼마나 힘들었니? 


그렇지만 그때 그것은 최선이었어.


그때는 그럴만했어.


힘든 그때 함께 해준 그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상처받을 것 같으면


잔뜩 웅크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신도 시야도 흐트러뜨리는


나만의 방어기제가


죽을 만큼 싫었는데




이제는 너를 안아주고 싶어.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그 버팀의 시간들이


1분 1초도 헛되지 않단다.




아무도 네 옆에 없다고 느낄 때


내가 너의 등을 쓸어내려줄게.


내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줄게.


내가 너의 손을 붙잡아줄게.


나랑 같이 밤새도록 펑펑 울자.



퉁퉁 부은 너의 눈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단다.


너의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란다.


눈물겨운 시간들 앞에


네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보여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거


나는 알고 있어.




우리 소리 내어 울자.


힘들면 힘들었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왜 나를 그렇게 대했냐고


나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마음껏 표현해 보자.




나는 워낙 소심해서


아직 말로는 힘들고


이렇게 글쓰기로 시작한단다.


글 쓰면서 울고


글 쓰면서 웃고


글 쓰면서 화도내고


글 쓰면서 욕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해지더라.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저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즐기자.




언제든지 연락해.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From. 네 친구 부끄 고릴라










누군가를 돌보아야만 하는 어린아이,


어리지만 연약한 부모를 위로해야 했던 어린아이,


학대당하고 있어도 살기 위해 참아야만 했던 어린아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려야만 마음이 편했던 어린아이,


큰 소리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어 생각이 멈춰버린 어린아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거부반응을 보이는 어린아이,


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 무조건적인 사랑의 느낌이 어색한 어린아이,






마흔 살인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아이는 


고작 7살에 머물러 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같이 내면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가정 학대 피해자이다.


나의 부모님은 나르시시스트에


심각한 우울증을 갖고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결핍된 공감능력으로


자신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어릴 적 나를 통제하던 수단은


비난, 깍아내리기, 가스라이팅이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에게 보이는 겉모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어린 나는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만 했고


나의 걸음걸이나 말투까지 항상 지적을 당했다.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고


나의 독립적 욕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부모에게 종속된 채 살아야만 했다.




정서적 허기와 결핍의 결과


가면성 우울증, 사회불안장애, 낮은 자존감, 


대인기피증, 성인분리불안, 공황발작 등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도 


늘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힘없는 아이에게 생존의 조건이었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은


공부를 잘하고 상장을 많이 받아야만


가능했기에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시절의


단 한 가지 삶의 목표는 오직 '공부'였다.








청소년기에 머리를 염색해보고 싶었던 나는


동네 미용실에 가서 


소심하게 머리만 짧게 자르고 왔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염색을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미용실에 다녀와서


단발머리가 된 나의 모습을 본


엄마는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면서


침대로 쓰러지셨다.




감정조절이 불가능할 때면


엄마는 나를 끌고 


지하 보일러실에 가두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무기력하게 끌려가


공포심을 고스란히 느끼고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절대로 완벽해야지,


라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절대로 나의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숨기는 법을


그때부터 터득했던 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면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몸에 밴 습관이자 방어기제로


나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타인중심적인 삶을 살던 내가


마흔이 되어서야


'나'라는 한 사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늘 엄마에게 톡이 왔다.


아빠와의 갈등 속에서


우울증이 폭발했나 보다.




네 아빠 때문에


머리를 벽에 처박고 싶다고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냐고




이런 엄마를 위로하고 상담해야만 하는 삶을


아주 어려서부터 해내야만 했다.


부모님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고


그 사이에서 건강한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온전히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책하고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다.





오늘은 좀 달라지고 싶다.


적절한 거리 두기가


오히려 건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감정은 엄마 자신의 것이다.


절대로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다.


평생을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감정적인 분리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울면서라도 생각을 전환하려 한다.






이렇게 아직도 갈 길이 먼


부끄 고릴라이다.


이런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몇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본다면


이만큼 성장한 내 모습에


감탄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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