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지 말자
오늘은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부부싸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우린 냉전 상태였으니 저 깊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불타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발단의 시작은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전날까지 평상시와 다를 거 없는 똑같은 나날들이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루아침에 황남편의 말투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침엔 준비하고 나가기 바쁘니 서늘함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때마침 할 이야기가 있어 황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나누고 끊으면서 비로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황남편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
그래서 생각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무슨 이유지? 어떤 포인트였을까.... 답은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알아차렸지만 나한테 그 이유는
귀여움을 품은 단순한 삐짐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날 저녁 퇴근한 황남편에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맥주 한잔 하자며 뚜껑을 열어 컵에 따르려는 순간 바로 정색하며 안 먹는다는 매몰찬 한마디와 함께 침대로 들어가 누우며, 보란 듯이 이어폰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눈을 감고 자는 폼을 잡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서먹한 공기 속에 밤은 지나갔고 편치 않은 잠결 속에서
눈을 뜨니 다음날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평일과는 다르게 나만 출근 준비를 하면 되는 터라 평소보단 여유롭게 시작되는 하루지만 침대 위 벽 쪽으로 휙 돌아 누워있는 황남편을 보고 있자니 답답함과 함께 숨 막힘이 확 올라와 여유고 뭐고 도망치듯 출근해 버렸고 이때부턴 귀여움이고 나발이고 나 또한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정말 싸우는 걸 싫어하고 특히 주말까지 이어지는 싸움은 최악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부분을 서로 잘 아는 우리 부부는 웬만하면 절대 주말까지 냉전 상태를 안 끌고 가려고 노력하는데 유독 이번 따라 고집부리고 있는 황남편이 너무 얄미웠다.
나는 오전에 황남편 결혼식 다녀오는 일정이 있는 걸 알고 있었고 내가 퇴근할 땐 벌써 다녀와서 집에 누워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집에 가는 퇴근길, 아들에게 한통의 문자가 왔다.
아빠가 자신들만 두고 나갔다는 문자였다.
당연히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나갔다면 바로 손절이다 생각하며 이를 바득 갈며 제발 아니길 바라며 마음과 함께 집에 도착했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집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황남편이 나랑 풀어 싶어서 장난쳤다는 생각이 들킬래 못 이기는 척 바로 황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나누고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끊었다. (전부터 사야 할 게 있다고 했다)
만남 후 조금은 어색하지만 괜찮은 척 황남편의 운동화를 같이 고르고 길거리로 나와 당연하듯 근처에 있는 굴찜 음식점으로 향했다.
원래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며칠 전부터 굴찜을 먹자고 약속한 날이었기에-
맛있는 것을 먹어서였을까... 아님 맥주 한잔이 들어가서였을까.. 아마 후자 때문, 아니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제야 팽팽한 막을 뚫고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남편의 화난 부분은 내가 귀엽다고 생각한 부분과 같았지만 거기서 서로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고 그것을 몰랐기에 불란이 일어난 것이다.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지 나의 감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더욱 불란은 커졌고 별 거 아닌 일이
엄청난 별거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꼭 기념일을 앞두고 꼬장 부리는 황남편이 얄미운 건 사실이었다.
우리는 올해 10년 차 부부다. 10년이면 꽤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 속속히 거의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린 생각하는 결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나타내는 행동도 여전히 달랐고 모든 걸 알진 못한 것이다.
이젠 많은 것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함께 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를 직면하고 서로 조심하며 더욱더 사려 깊은 배려와 보이지 않는 선 지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되뇌게 되었다.
더불어 밑도 끝도 없는 쓸데없는 나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면 할수록 어떤 상황에서도 꼭 지켜야 하는 진짜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다
우린 지금 10주년을 향했고 이렇게 하루하루가 채워져 흐르면 벌써? 하면서 금방 11주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에 우린 어떤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지.. 또 싸움으로 시작하고 끝을 낼지 기쁜 마음으로 함께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사려 깊은 배려심이 쌓이면 우린 후자의 의미 있는 기념일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다.
황남편에게 제대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일상이 오르락내리락 엎치락 뒤치락인 나와 살아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나의 정신없는 나날들 함께하자고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