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고 난 뒤

알아가는 중

by 은조

퇴근길, 조금이나마 이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는 것으로 애써 지워지지 않는 극한의 피로도와 기분 더러움을 삭히며 발길을 재촉하는데 당연히 집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마침 내가 지나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연락이 타이밍 좋게 남편에게 온 것.


아이들에겐 깜짝 이벤트로 데리러 온 마냥 엄마 여기라고 전화를 걸자 가방 둘러매고 저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보였고.. 거짓말처럼 그 사랑을 보며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일단,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의 사적인 일 말고도 챙겨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에 사소로운 것이나 그전에 있던 일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평소와는 조금 달리 셋이 다 같이 집으로 향하는 길.


아들은 여느 때처럼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손을 꼭 붙잡았고 나도 여느 때처럼 위로 푹 포개 아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다음날 있을 학원 보충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들이 갑자기 11시 20분까지 간다고 하는 것-


그 말을 들으니 며칠 전, 학원 선생님에게 받은 보충 문자가 떠올랐고 얼핏 보긴 했어도 10시라고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니라고 아마 10시쯤일 거라며 엄마가 다시 보고 말해주겠다고 하니 아니라며 칠판에 분명히 11시 20분이라고 쓰여있다고 하는 것이다.


칠판에? 음… 칠판에…?

그렇게 계속 아들이 칠판에 적혀있었다며 말해대니 내가 잘못 문자를 기억하는 건가? 기억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아들에게 집에 가서 문자를 다시 보겠노라 말하며 마무리를 하려는 찰나, 뭐가 그렇게 확실하고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아들 녀석은 아니라며, 11시 20분이라고! 높은? 목소리로 버럭 짜증을 내는 것이다.


또, 그런 행동에 가만히 참지 못하는 나란 엄마는 같이 버럭! 하며 뭘 그렇게 짜증을 내냐며 한마디 하자 아들이 하는 말…

- 아니, 엄마가 우기잖아!


우겨? 우겨? 거기서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어디서 버릇없게 이야기하냐고 막 뭐라고 해버렸다.

혹여나 엄마말이 틀리다고 하더라도 우긴다는 말을 써?

엄마가 네 친구냐고 생각하고 말하라고 막 퍼부었다


나의 윽박에도 받아들이는 얼굴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함부로 이야기하는 아들 태도에 참을 수 없었고 처음 만났을 때 행복은 이미 온대 간대 사라진 지 오래.. 각자 다른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나는 씩씩대며 남편에게 막 문자로 있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속상함을 쏟아부은 뒤 거실로 나와 집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아들 녀석도 핸드폰으로 막 뭔가를 하는 거 같아 보였다.


시선이 갔지만 뭐하는지 따로 묻지 않고 할 일 하고 있었더니 조금뒤 내 옆으로 온 뒤 약간의 멋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 아. 엄마 그 칠판에 쓰여있는 건 다른 형, 누나들 시간표였대


하, 집에 와서 선생님이 보내준 시간표를 보여줬음에도 그 말도 못 믿은 건지 뭔지 결국 수학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기어코 확인을 하는 아들의 마음 심리는 무엇일까?


엄마인 나를 신뢰할 수 없어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본인이 본 것에 대해 확인? 본인 확신이 그렇게 강한 것인가? 그 순간은

앞의 이유라고만 생각이 들었고 잊고 있던 직장에서 있었던 나를 함부로 했던 사건들까지 다 떠오르며 다시 기분은 급 다운되어 버렸다.


선생님 말이라면 바로 믿으면서 엄마인 나의 말은 믿지 않는 것이 내가 우스운 건가? 아이들을 재우고 가만히 누워 기분을 내리려고 해 보지만 결국 이 사건은 나의 자격지심 문제로 다시 불꽃이 피어올라버린 것.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은 나의 문제리라.

내가 뭔가 이루지 못하고 잘나지 못했으니 엄마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 들지 않으니 아이가 믿지 못하는 거 아닐까?

선생님 말은 단번에 믿었으니…


이런 나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 없었다.

속상함을 품고 있는 나를 저녁 퇴근 후 불러내 가장 좋아하는 주꾸미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둘이 앉아 먹으며 나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아이들 이야기부터 직장 이야기까지-


그만둬,라는 남편의 말은 해결은 되지 않지만 늘 큰 위로로 다가오고 마음을 다시 다잡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아들에겐 본인이 단호하게 말하겠다는 그 든든함에 어느 것에

비 할 수 없는 행복함에 벅차진다. 아빠 부재 속 엄마 혼자 오빠와 관계에서 버거워하며 힘들어했던 상황을 지켜보며 살았었는데.. 나는 그 상황이 아니라는 것에 말이다.


어휴, 근데 남편이 또 그렇게 말하니 아들에게 또 쏘아댄 것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며 못난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반복을 하는 저녁을 보낸다.


이 또한 남편이 그린 큰 그림이었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런들

다음날 아침, 역시 아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평온하고 고요한모습으로 평소와 같이 행동을 했고 나도 그런 척을 했다.


학원 가기 전, 아침밥을 먹고 사부작 치우는데 아들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물었다.

- 엄마, 학원 10시였나?

-10시 30인데 동생이 10시까지니까 10시까지 같이 가면 돼

-응


음,,,, 느낌이 다르다. 너도 나도-

전날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루 고나니 서로 조심하며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소통방식... 서로 조금 더 정확한 초점에 맞춰 서로가 하는 말에 의심하지 않고 조금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린 분명 느꼈다.

그렇구나, 서로를 할퀴는둣한 경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론은 이렇게 또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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