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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Apr 27. 2024

지극히 사적인 하루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쉬는 날이었다.

동네 소아과에서 조무사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토요일도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주 5일제로 평일 하루를 쉬는데 이날은 평일의 쉬는 그 하루였다.


이곳에서 2년 넘게 일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병원에서의 일이 신경 쓰여 집까지 불편한 감정을 끌고 온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계속해서 몇 가지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쉬기 하루 전 퇴근즈음 두 번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 그 전화로 인해 계속해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작용한 것이다.


어쨌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는 노릇이라 대체로 일은 일대로 직장에 버려두고 오고자 노력해 왔는데  그 버튼이 정상작동 안 되고 있음이 느껴진 것과 그러한 불편함 속에 쉬는 날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에 상당히 짜증 났다.


쉬는 날은 쉬는 날이지만 늦잠? 그딴 건 나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쉬는 날이어도 똑같은 시간마다 울리는 알람.

똑같이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 나의 몸뚱이.


일어나라, 밥 먹어라, 씻어라, 옷 입어라

죽어라 잔소리를 해대야 빠릿빠릿 움직이는 아이들

내가 이렇게 쉬는 날이면 여유 속에 품격 있는 잔소리를 뿜지만 나도 준비해서 나가야 하는 치열한 아침 전쟁 속이라면

속 타 오름이 끓어오르고 오르고 올라 터지기 일쑤다.


날씨도 흐리고 쌀쌀한 날씨.

둘째 출산 후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이렇게 궂은 날씨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허리랑 관절이 시큰시큰 뻐근 뻐근..

쉬는 날엔 황남매의 등, 하교를 직접 시켜줄 수 있음이 참 좋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으로 가야 하지만 굳이 굳이 나는 데리러 가서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가고의 고생을 사서 하는데 그것이 내가 워킹맘으로 써 스스로 주는 보상심리라고 생각이 든다


1학년인 딸아이.

아직 1학년은 선생님이랑 교문 앞까지 같이 두 줄로 서서 나온다. 유독 딸아이 반만 늦게 나오는 편이라 처음엔 맨날 왜 늦는 건지 의아해했지만 항상 밝은 얼굴로 때론 머리에 가면 같은 걸 쓰고 온다던지 때론 손에 만든 것을 이고 지고 오는 딸아이를 보며 궁금증은 날려버릴 수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담임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헤어진 뒤 나를 발견한 딸은 가방부터 벗을 준비 하며 달려온다

당연하듯 가방을 벗어 엄마가 맬 것을 요구하는 딸아이

이 아이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나를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는 딸아이를 보곤 내가 더 아쉬워바로 보내고 싶지 않아 두 손을 잡고 근처 분식점으로 간다. 이제 매운 것도 제법 잘 먹는 딸아이에게 그 순간은 세상 제일 맛있는 떡꼬치를 사준다. 시원한 포도맛 슬러시도 함께-


슬러시의  달콤함과 시원함을 온몸으로 먹은 뒤 사랑스럽게 딸아이는 학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시간 남짓 나의 자유시간.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말차라테’ 아이스로 주문-

그리고 핸드폰으로 글을 이어서 적어 내려가본다

그 순간은 슬러시보다 더욱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다


달콤함에 젖어 깨어날 때쯤 딸아이를 데리러 갔고 아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다시 카페에 간다?!


나는 가기 싫지만 딸아이는 엄마의 쉬는 날을 애타게 기다린 이유 중 하나가 카페라는 걸 잘 아는 바이기에 그냥 간다

가서 딸아이 좋아하는 망고주스, 그리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가 먹기까지, 아들이 끝나기까지 기다리다 내가 주문했던 커피는 테이크아웃 잔으로 바꿔 가지고 나와 황남편에게 직진 배달해 주고 다시 학원으로 끝난 아들을 데리러 갔다


버스를 타고 치과로 향한다. 이 주 전 미리 아들의 충치치료 예약을  잡고 왔는데 이날이 바로 치료 예약한 그날이다

다행히도 예약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고 시간 잘 맞춰

치료가 시작되었다. 나도 첫 일의 시작을 치과에서 일을 했기에 어느 정도 스타일과 느낌이 딱 오는 편인데 우연히 학교 검진으로 알게 된 이번 치과는 좋은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왔음에도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치료를 받는 아들의 다리에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고 아픔을 표현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버거워 슬금슬금 대기실로 나왔다.


얼마뒤 감사하게도 무사히 잘 끝낸 아들의 얼굴은 영혼이 반쯤 나간듯한 표정이었지만 잘 참고 견뎌낸 아들이 많이 컸구나 싶어 대견스러웠다.


아침에 미리, 저녁 반찬과 국을 끓여 준비해 놓고 나왔지만

나의 예상대로 치과 근처에 있는 우리의 단골 쌀국숫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걷는 내내 황남매가 내 양쪽 손을 한 명씩 부여잡았는데 그게 뭐라고 내 삶의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힘드니 손을 잡은 채 점점 몸을 뒤로 빼며 걷고 나는 앞으로 나 가아 고자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두 발에 앞쪽으로 힘을 주어 전진해 나아간다.


너무 무거우니 손을 놓고 싶기도 했다. 잠시라도 손을 놓고 걸으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 아이들이 언제까지 나에게 기대지만을 않을 것이며 나의 손을 떠날 날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음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음에 느낄 수 있는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물론, 그 감정임에도 여전히 걷는 건 버겁고 뒤로 처진 아이들의 발걸음에 버겁기도 무겁기도 했지만, 그랬지만 집에 도착하고 나선 내가 아이들을 지키고 무사히 왔음이 스스로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작은 것에도 많은 이유와 의미 부여하며 살아가는 삶이 쉽진 않지만 난 이렇게 태어나버려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감격은 단지 집에 도착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는 듯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참으로 감사해 감격스러운 지극히 사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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