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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Apr 20. 2024

사연 있는 여자

훗날, 속초에서

얼마 전, 10년째 만남을 이어가는 조리원 언니들을 만났다.

우리의 만남은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는데 꼭 만나려는 마음이 모였기에 지금까지도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 든다. 어느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관계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진작에 깨달은 이치인 것-


많은 조리원 동기들 중 돌고 돌아 지금은 나를 포함 네 명으로 줄여졌다. 우린 멀진 않지만 각자 다른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어 할 수 있는 말들이 더욱 많은 거 같다고 어느 언니가 말을 했는데 백 번 천 번 맞는 지당한 말씀이 옳시다-

너무 가까운 붙어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이라면 가식적으로라도 가리고 가려 살펴야 하니 말이다


우리의  대화 중 90프로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며 그다음으론 황당했던 거나 힘들었는  거 위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고 나면 거짓말처럼 고통이 작아지고 기쁨은 바람이 가득 차다 못해 터지기 직전인  풍선처럼 더 크게, 더 크게, 만들어준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그렇게 느끼는 한마음 아닐까?


당연하겠지만? 우리 네 명도 처음부터 딱! 친해질 케이스는

아니었다. 세명의 언니들은 나보다 먼저 조리원에 입소해 있던 중 그녀들 보다 뒤늦게 어느 날 저녁에 부랴부랴 입소하게 되었는데 간밤에 나타나서였을까? 아니면 너무 어려 보여서였을까? 나는  그렇게 사연 있는 여자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물론, 사연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해 집 근처에 있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조리원으로 갔다. 이때 나에게 조리원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밥을 방으로 가져다주느냐, 식당? 에서 같이 먹느냐-

한마디로 개인적으로 지내느냐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느냐 그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복닥 복닥 사람들과 부딪치는 거에 피로감을 느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기에 개인적으로 지낼 수 있는 그곳으로 정했는데, 2주 계약한 곳에서 1주일 정도 되었을 때였나? 신생아실 복도에서 소화기가 터진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엄청 특별한 모성애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

그곳에 아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들었고 나는 그렇게 어느 날 낮에 1주 만에 퇴소를 하게 되었다.


낮에 퇴소를 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갔는데

가자마자 현실 육아가 시작되는 것이다. 당시 22살이었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나를

가엾게 여긴 황남편은 지인이 소개해준 조리원으로 옮겨주었다. 나는 그저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 수도-


그렇게 되어 나는 간밤에 다른 조리원으로 입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만나는 언니 중 한 명이 그때가 아직도 생각난다며 수유실에서 수유하는데 어떤 남자가 엄청 급한 모습으로 원장님께 이야기했다며 그 다급한 남자 뒤로 내가 들어왔고 모습을 언니가 재연하는데 순간 그날이 당황스러움이 떠올라 아찔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데, 지금도 내가 그랬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데 같이 밥 먹을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항상 제일 먼저 일어나서 방으로 가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호기심 이른 마음, 그리고 본인들이 상상하는 생각 쪽으로 나를 사연 있는, 그것도 심하게 안 좋은 사정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 일이 있고 나선 그 사람들 중 몇몇은 나를 입방아에 찧고 내리는 가십거리로만 여긴 것이 아닌 진심으로 마음을 보여주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녁시간이었다. 항상 제일 빨리 가서 먹고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던  내가 배식 시간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났는데 식당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끼리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눈 뒤 그중 제일 나이 많았던 언니가 나의 방문을 벌컥 열었고 그 소리에 놀란  나는 잠자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내가 자고 있었다는 사실에,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그때 언니는 입 밖으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두 눈에는

두려움과 안도감이 섞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음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친해진 언니는 말했다. 내가 죽었으면 어쩌나 했다고


내가 그 정도로 불행해 보였던 것일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엄청난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불행할 일도 없었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의 감정이 나의 낫빛에 드러나고 있었나 보다.


조리원을 퇴소하고도 카톡으로 서로 아는 거 모르는 거 정보를 공유하며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한 번에 매끄러운  대화는 이어갈 수 없었지만 -


아이들 컨트롤이 좀 자연스럽다고 느껴질 때쯤 우린 애기띠를 매고서라도 만났다. 물론 거기서도 매끄럽게 밥을 먹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앉아있는 사람보다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해 서서 위아래로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우린 만남 뒤에 재 만남을 항상 기약하며 헤어졌다.


유일하게 추레한 모습이 자연스러운 조리원, 서로가 서로의

가슴을 내놓는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그 조리원에서 가장 어렵고 버거울 때 만난 우리라서 인연이 쉽게 끊어지지 않나 보다 생각해 본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우린 노년에도 함께 할 거 같다.

모두 ‘속초’라는 공통된 장소가 있으니 말이다.

A 언니는 속초가 고향이고 B 언니와 나는 속초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기를 꿈꾸고 있는 서울 사는 사람들이며

C언니는 속초에 시댁이 있으니 모두 연관되어 이어진다

유일하게 C 언니만 속초에서 살기 싫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거꾸로 뒤집어 놓아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 함께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지금부터도 우스갯소리로

“우리 나이 먹어서도 속초,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이렇게 수다 떨고 있는 거 아니야?” 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그 우스갯소리가 쉽게 지나치기만을 어려울 거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또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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