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크림리조또
아침 출근길에 지나는 레스토랑의 메뉴가 언듯 눈에 들어 온다.
마라뼈국, 마파순두부
요즘 유행 중인 중국 음식을 패러디한 이름들이었다. 언듯 피자 위에 바베큐 치킨이 있는 바베큐피자, 김치버거 등의 메뉴가 떠올랐다. 한국엔 왜 유독 퓨전 음식들이 많을까?
두부김치 카나페
로제떡볶기, 짜장떡볶기 - 소스에 따라 무궁무진함
김치피자탕수육
명란젓파스타
카레빵
김치우동
된장크림리조또
밥버거
짜장버거
치즈전
롤 스시
비빔 돈가스
태국냉면
떡버거
파스타 볶음밥
비빔피자
쌈부리또
고추장파스타
김치치즈스틱
우리가 가진 문화, 어디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까? 나는 근대사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보았다.
가난하고 불운한 우리 부모님 세대 때 부터 물자 부족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가족에게 서브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로, '원본'은 아니지만, 유사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비슷한 음식을 만들고 이를 나누어 먹곤 했었다. 일제가 돼지 고기를 모두 수탈해 가자, 조선 땅엔 돼지 고기가 남지 않아, 돼지 발을 간장에 절인 족발, 내장을 음식으로 만든, 순대와 내장탕 등이 시장에 생겨났고, 1950년 625 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주고간 햄을 가지고 김치 찌게를 끓여 부대찌게라는 음식이 생겨 났다. 이러한 음식들은 우리 고유의 음식은 아니지만, 영양가 높은 국민 요리로 발전해 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존 전략으로 이런 '임의적'이고, '변동적' 음식을 받아 들이는데 어느덧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다.
대학 때 한 친구가, 시골에서 한 집에 컬러 TV가 들어 오면 1년도 되지 않아 전 마을의 TV가 바뀌곤 했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고 정보력 빠른 민족 특성이 보여지는 에피소드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음식이 들어 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빠르게 받아 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를 재료와 여유가 있진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정에서 대충 있는 재료를 가지고 비슷하게 만들어 이름도 비슷하게 갖다 붙이면, 그저 넙죽넙죽 맛지게 받아 먹을 뿐이었다. 옆집 언니가 해 주었던 떡복이에 꼬들꼬들한 라면을 넣은 음식은 정말 맛이 있었는데, 다른 많은 가정에서 이렇게 떢볶이 만들 때 라면도 동시에 넣어 먹었는지, 80년대 말 쯤 해서는 아예 '라뽂기'라는 이름의 음식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놀이 공원 등엘 가면 닭꼬치는 항상 유명했는데, 그 때 물가로는 비싼 이유도 있지만, 메뉴를 늘리기 위해, 은행꼬치, 양고기 꼬치, 떡꼬치 등으로 또 분화시켰고, 사 먹는 사람들도 그러한 베리에이션을 즐겁게 받아 들여 일부는 원본인 닭고치 이상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원래 아는 음식 + 새로운 식자재' 포멧의 독특한 이름의 음식을 발견하면, 가난하지만 정나누며 달게 먹던 시절의 정서가 생각나며, 관심이 간다. 예절과 매너를 귀족의 생명으로 여기는 문화가 아니라, 배고픔 가운데 음식을 나누던 훈훈한 정서를 그리워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옆집에서 만든 값싸고, 특이한 요리를 무시하기 보다는 그것을 즐겁게 나누는 정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은, '짜장스파게티', '고향치킨', '파닭' 식의 퓨전식 혹은 정에 의존하는 이름의 음식들이 무한 히트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인 이름의 음식들이 예전 처럼 계속 승승장구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이제는 이런 식의 요리명은, 틈새시장 목표 조차 어려운 남루한 이름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왜 그럴까? 이젠 오히려 너무나 먹거리가 많아, 과식을 제한하는 시간에 이미 오래전 빠르게 진입했기 때문에 더 이상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그런 정서가 안 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까다로와졌고, 요리에서도 식품에서도 정석을 찾기 시작한지 오래다. 파인다이닝이 히트치는 이유도 그것이다.
외식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전문성의 시대에 살며 성공하려면 한가지 요리를 하더라도 고객을 향한 진심이 느껴질 수 있는 요리여야 할 것 같다. 이름 하나 잘 지어서 정에 기대 어떻게 해 보려는 자세는, 구차하기 조차하다. 이제 한국의 퓨전도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이것 저것을 섞어 놓고 퓨전이라 하는게 아니라, '요리의 재해석'을 통해, 더 깊은 감성으로 요리의 원류를 찾고, 더 지극한 정성과 섬세함으로 다가가는 퓨전요리가 더 많아지기를....
이젠, 요리에서 더 깊은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찾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아침 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