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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goshima Mon Amour

1. 흐르는 강물처럼

by KAKU

Kagoshima Mon Amour.


왜 가고시마였을까? 왜 가고시마鹿児島에 가고 싶었을까? 물론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꼽을 수 있는 이유들 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왜 가고시마에 특히 가고 싶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어쩌면 그 이유는, 가고시마에 가보고 나서야 찾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Kagoshima Mon Amour, 나의 짧은 가고시마 여행기를 시작한다.


1. 흐르는 강물처럼


가족여행으로 후쿠오카에 간 둘째 날,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여기저기 갈 곳을 알려주고, 혼자서 호텔을 나섰다. 호텔이 번화가인 텐진에서 가까웠고 하카타역까지도 그리 멀지 않았기에 산책 삼아 하카타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있는 야나기바시 시장과 스미요시 신사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11시가 조금 넘어서 하카타역에 도착했다. 12시 전에 신칸센을 타면 1시 쯤이면 가고시마에 도착할 수 있다. 비싸기로 악명높은 일본의 기차요금이지만, 나에겐 JR 규슈패스가 있다. 생각 같아선 기차를 타고 전 규슈를 돌고 싶지만, 혼자 온 것이 아니므로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 가고시마에 갔다가 밤에 돌아오려면 시간이 많지가 않다.


11시 반쯤 가고시마행 신칸센을 탔다. 1시간 반쯤 후면 가고시마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미소라 히바리의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을 들었다. 힘있는 김연자 버전도 좋고, 달달한 등려군 버전도 좋지만, 역시 이 경우에도 오리지날이 제일이다. 달리는 신칸센에서 듣는 미소라 히바리의 '가와노나가레노요우니'. 이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오후 1시 무렵, 드디어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사쓰마다. 일본 최남단을 대표하는 도시. 역에서 가고시마 시내의 버스와 전차 등을 이용할 수 있는 큐트패스를 구매했다. 이제 하루 동안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렸다가 다시 버스나 노면 전차를 탈 수 있다. 사실, 아무 버스는 아니고 시내의 버스에 한정된 것인데, 이날 나는 정말로 아무 버스나 탔다가 시외로 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시간을 2시간 가량 허비하고 초과 비용까지 지불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도 가고시마에서 있었던 일인 것을. 아무튼.


가고시마 중앙역을 나오면 가운데 광장에 ‘젊은 사쓰마의 군상(若き薩摩の群像)’이라는 동상이 보인다. 이 동상에는 가고시마, 즉 사쓰마의 자부심이 한껏 담겨있다. ‘일본의 근대화를 우리가 주도했다’는. 사쓰마薩摩는 가고시마현県이 번藩이었던 시절의 이름이다. 삿초동맹薩長同盟으로 조슈번長州藩과 함께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바로 그 사쓰마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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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사쓰마번은 중앙정부인 에도막부와는 별개로 영국 함대와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사쓰마-영국전쟁薩英戦争이다. 일본 전역에서도 전투력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사쓰마였지만, 영국의 화력에 박살이 나고 만다. 사실 박살이 났다고는 했지만, 대영제국의 함대에 맞서서 사쓰마가 제법 잘 싸운편이었다. 그래도 영국, 서양의 힘을 절실하게 깨달은 사쓰마는 1865년, 15명의 젊은이들을 뽑아서 4명의 사절단과 함께 영국으로 보낸다. 그때 갔던 사람들이 바로 ‘젊은 사쓰마의 군상’의 주인공들이다.

비슷한 시기, 사쓰마와 함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초슈번에서도 5명의 젊은이를 영국으로 보냈다. 이른바 조슈파이브라고도 불리는 조슈오걸長州五傑. 이 중의 한 명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일본 열도의 남쪽 끝, 규슈에서도 가장 남쪽인 사쓰마번이, 일본 본섬인 혼슈에서도 가장 끝인 현재의 야마구치현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내가 오늘 이곳을 온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하자면, 사쓰마의 지겐류示現流, 막말幕末 최강의 검술로 꼽히는 지겐류의 흔적을 찾아서였다는 것만 밝혀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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