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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와 '추억'.

by KAKU

지난 달 16일,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죽었다. 향년 89세. 로버트 레드포드는 1936년생으로 우리나이로 치면 90살을 살았다. 워낙 전설적인 영화배우니까 내가 별로 덧붙일 말은 없지만, 그의 몇몇 영화를 나도 매우 인상깊게 보았다는 말은 남기고 싶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그의 많은 영화 중에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영화는 <추억>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유튜브에서 <추억>의 몇 장면을 다시 찾아 보았다.


<추억>은 1930년대 중후반(1937년) 미국의 한 대학을 배경으로 한다. 수려한 캠퍼스와 학생들의 수준을 볼 때, 아이비리그쯤 되는 학교로 보인다. 영화의 도입 부분에 여 주인공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학생들이 모인 캠퍼스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다. 케이티는 이른바 열성 운동권 학생이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방에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다. 당시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인 때였다. 케이티는 파시스트인 스페인 정부를 비판하고 미국이 전쟁에 개입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케이티의 이러한 주장은 설들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케이티의 생각에 모든 학생이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설정 상 케이티가 이전에 보여준 극좌적인 행동들에 대한 비판을 하는 학생들이 케이티를 조롱하는 장면도 있으니까. 이러한 케이티의 연설을 지켜보는 학생 중에 남자 주인공 허블(로버트 레드포드)이 있다. 허블은 잘 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특히 교수의 특급 칭찬을 받을 정도로 글을 잘 써서 케이티에게 열등감을 주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인싸 중의 인싸. 영화는 이 둘이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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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같은 제목의 노래로도 유명한 이 영화의 원제는 ‘The way we were’. 직역을 한다면, ‘우리가 있었던(살았던) 방식’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목을 한국 제목으로는 ‘추억’이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번역은 아니지만, 영화의 내용을 볼 때, 지나간 세월을 단순히 ‘추억’이라고만 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딱히 더 좋은 번역이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파파고에서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땐 그랬지’라고 번역을 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1930년대 미국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있었다. 그 이후, 매카시즘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갔고,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사회주의와 소비에트가 붕괴하면서 미국의 좌파는 거의 소멸했지만, 그땐 그랬다는 것. 그것이 옳다는 것도 그르다는 것도 아닌, 다만 그땐 그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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