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실질적인 내 첫사랑이다.
그것이 온전히 상호 간에 이뤄진 사랑이었나,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더 컸던지라...
어렸을 때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깨달았다.
돌려줄 마음이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스물셋이었나.
그는 나보다 한두 살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자세한 전공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일터에서 만난 사이였다.
(내가 만난 남자 대부분이 비슷한 전공이었는데
아무래도 특정이 되는 것 같아
이 부분은 밝히지 않으려 한다)
그는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그때까지 남자를 만난 경험이 거의 없던 나와 달리
그는 아주 많은 여자애들과 잠자리를 가졌고
또 꽤 많은 여자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와는 싸움이 안 되는 상대였다.
나는 전형적인 짝사랑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향한 마음을 접으려는 시도를 몇 차례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귀신 같이 당근을 던져줬다.
불안한 자아를 가진 이들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별 감정 없이 그를 떠올리지만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롱패딩의 지퍼를 올려주는 하수 여우의 장난이
이십 대 초반 어린 여자에게는 통하는 법이었다.
이후로 나는 너무 많은 남자를 만나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졌다
너무 쉽게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여전히 첫, 사랑하면 내게는 네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어째서 그 애의 여자 친구가 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그 시절의 나와 너, 우리는 업계에서 성공하겠다는 열망에 휩싸여 있었지.
지금이 우리 둘 모두에게
동 트기 전 가장 어두운 때가 아닐까?
나도, 내 첫사랑인 너도
부디 이 어둠을 잘 헤쳐 나가길.
그리고 언젠가 다시 우리의 일터에서 만나길.
혹여 우리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는 뜨겁게 말고, 가볍게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