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등생의 자존심

그랜저를 몰고 온 동창들

by 유초화

아버지는 학창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진로상담이 있는 날이면

늘 큰아버지가 학교에 갔다.


큰아버지는

자기가 전교 1등을 했을 때보다

그 아이가 1등을 했을 때

더 기뻐했고,

집안의 자랑인 양

더 자랑스러워했다.


물론

그가 다니던 학교는

시골 동네에 있는 평범한 학교였다.

눈에 띄는 우등생이긴 했지만

그래봤자

촌동네 안에서의 일이었다.


성적 같은 것은

아이들 사이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했고,

아버지는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같이 웃고 떠들었고,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내려다본 기억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던 모범생은

그 시대에 가장 무난한 선택을 했다.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은행에 들어갔다.


안정.

성실.


그의 삶은

그 두 단어로

충분히 설명되었다.

정해진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차곡차곡 올라왔고,

그 과정에서

대체로 칭찬을 받았다.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는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들보다

조금은 더 안정된 삶을 살게 되리라고,

적어도 물질적으로 뒤처질 일은 없으리라고

특별한 근거 없이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전제처럼

그의 삶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었다.


은행에 들어간 지

십 년쯤 되었을 때였다.

과장 진급을 눈앞에 두고

동창회에 나갔다.


기억 속에서

늘 뒤처져 있던 얼굴들.

성적표에서는

항상 자신의 아래에 있던 이름들.


그들이

그랜저를 몰고 나타났다.

손목에는

눈에 띄게 반짝이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며 웃는 얼굴에는

조심스러움이 없었다.


그 장면은

어쩐지

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누군가 실제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풍경은

분명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말을 잃지도 않았고,

표정이 크게 변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기 안에 세워두었던 기준 하나가

아주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어떤 고생 끝에

그 자리에 왔는지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그 순간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눈앞에 놓인 현재였다.


만족스럽다고 믿어왔던 삶의 어딘가에서

소리가 났다.


우지끈.


그것은

시기도,

질투도,

뒤늦은 후회도 아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자존심이었다.


다른 길을 상상해본 적 없이

주어진 길에 순응하며,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온

우등생의 자존심.


그 단단하다고 믿었던 것이

그날,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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