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버린 열 살
모든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신 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얼마만큼의 빚이었는지는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을까.
아버지는 해외로 도피했고,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먼 친척네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봄이 막 오려던 계절에
우리는 그렇게 도망을 쳤다.
물론 엄마는
이 사실을 나와 동생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출장을 간 것이고,
살던 집은 수리가 필요해
반년이나 일 년쯤
다른 집에서 잠시 지내는 거라고 하셨다.
이사를 한 이튿날,
안정적인 삶을 믿어왔던 엄마는
순간의 절망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아니면 마음속에 눌러두었던 진심이었는지
나와 동생 앞에서 같이 죽자는 말을 했다.
막 일곱 살이 된 동생이
죽고 사는 게 뭔지는 알까.
자기는 죽기 싫고 살고 싶다고 해맑게 말했다.
그제야 엄마는
정신이 든 사람처럼
우리를 끌어안고 울었고,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는 엄마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아니, 동생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겠지만
나는 앞으로 우리가 아주 힘든 시간을 지나게 되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엄마를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픈 곳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집 안의 공기를 살피며
엄마의 얼굴이 어두운 날에는 더 조용해졌고,
엄마가 말이 많아지는 날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 가지 않는 이야기에도 맞장구쳤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건 엄마를 살게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막연하게 짐작만 하던 일이
더 이상 짐작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빚쟁이가 도망친 아버지를 찾으러
내가 다니던 학교로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 어른은
교실 앞까지 와서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댔고,
아빠가 어디에 있느냐고
친절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은 말투로 내게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하자
그는 이상한 아저씨 아니고 아빠의 친구라고 말한 뒤,
다시 한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아무것도 몰라서 대답할 수 없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
나는 교실로 들어갔지만
그 아저씨는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교문 근처를 맴돌며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오가는 모습이교실 창문 너머로 보였던 것이다.
하교 시간이 다가올수록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고,
교실을 나서 집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저씨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섭다는 생각조차 정리할 틈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어
익숙하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간 뒤
일부러 발걸음을 늦췄다가 갑자기 속도를 올렸다.
코너를 몇 번이고 돌아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을 때,
나는 집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뒤돌아 나를 반기는 엄마 앞에서,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야 할지,
말하지 말아야 할지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꼬박 하루를 고민했다.
나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들켜버려서
우리 가족이 더 큰 곤란에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아마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탓이 될까 봐.
열 살이면
몰라도 되는 사실들이 있고,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어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아이로 남을 수 없어서
어른이 된다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