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자란 아이
이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마는 눈에 띄게 지쳐갔다.
짜증과 화가 늘었고,
의지할 곳도
마음을 내려놓을 곳도 없던
엄마의 감정은
대부분 나를 향해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해가 지도록 내가 보이지 않으면
대문 앞에 나와 서성거리셨고,
없는 살림에도
늘 손수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학교에서
내가 선생님께 밉보일까 봐
주말마다 자진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러 가셨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내가
어디서든 미움받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사랑받고,
상처받는 일만큼은
겪지 않게 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보다
조금 더 안전한 온실을
내 앞에 먼저 세워두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아무 예고도 없이 혼이 났고,
매를 맞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기도 전에
말들이 먼저 날아와
몸 안으로 박혔다.
가령
상추를 씻으라는 심부름을 받았을 때였다.
나는 꼬다리를 따지 않고
그대로 씻었다.
그게 잘못인 줄은
정말로 몰랐다.
그 순간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는
벼락같은 말과 함께
거친 욕설이
쏟아졌다.
억울했지만
변명하면
더 큰 불이 붙을 것 같아서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말을 아낀 탓인지,
억눌러 둔 감정이
어딘가에서 새어 나온 탓인지,
아니면
나 역시 엄마에게는
버거운 존재였는지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아무리 어른 흉내를 내도
아이는 아이였기에
혼자 견디다 버거워
짜증과 칭얼거림이
묻어 나오는 날이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 년 때문에
지 아버지가 되는 일이 없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내 탓도 해보고,
엄마 탓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해할수록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조심해야 할 것들만 늘어났고,
말하지 않는 법만
하나씩 배워갔다.
불편한 배려와
불안과 사랑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던,
그런 시간이었다.